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있다는 ‘산자루’라는 조각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각각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으로, 그 의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처세법의 근간을 이루는 “말하지 마라, 듣지 마라, 보지 마라”라고 들었다. 이 조각이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비례물언, 비례물청, 비례물시에서 유래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마라”라는 뜻이었다.
그 후 제법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게 되었고,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대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스스로 귀와 입을 막아버리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짧게나마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진다. 내가 편하고 볼 일이라는 가짜 믿음을 유지하는 동안, 꽤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부서지고 깨졌다. 그리고 내가 외면하는 동안, 적어도 내가 볼 수 있었던, 그래서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었던 것만큼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있을 것이다.
지난 몇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다. 트위터만 들여다봐도 끝나지 않는 지옥도를 보는 기분이었다. 현대의 지옥도는 아마도 스크롤 방식으로 펼쳐지는 족자 형태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는 구어적 표현도 가능하지 않은. 논란의 중심에 선 티셔츠는 내게도 있다. 이 티셔츠는 더는 입 없는 척, 귀 없는 척, 눈 없는 척하며 살지 않겠다는 생각의 한축을 담당한다. 그래서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트위터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트윗을 본다. 요약하자면 본인 스스로도 여성 혐오에 매몰되어 살았던 걸 모르고 있었지만, 최근의 일들을 계기로 페미니즘을 통해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 해당 트윗을 쓴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불과 몇년 전에 누군가가 내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망설였던 것을 반성했다. 그때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데 망설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말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몰랐거나 불편하거나 이해하기 싫은 것을 들으면 힘들고, 보면 아프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는 진보라면, 진보와 페미니즘이 같은 뿌리라는 걸 몰랐으므로 이제부터 보수를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곡해할는지 모르겠으나, “예가 아닌 것”이라고 우기며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아 얻을 “진보”보다는 훨씬 값질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진보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