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3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꽤 많은 하객이 오셨더군요. 일단 저는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뒀습니다. 땅이 갈라질 경우 어느 쪽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가. 동대문 방향이 적합할지 아니면 시청쪽이 목숨을 유지할 확률이 높을지. 또는 기존의 전통적인 징벌방법에서 벗어나 거대 카이주의 출몰 같은 창의적인 방법도 은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광통교 밑바닥이 쩍 갈라지면서 브리지가 생성되고 5등급 카이주 슬래턴이 나타나는 거죠!
6시에 결혼식이 시작됐고 공연을 포함한 식순이 진행되는 순간 저는 저의 심장 박동 수가 천천히 템포를 높이며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질 거대한 스펙터클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이 자리에 온 것을 후회할 것인가 등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곰플레이어로 8배속 돌듯이 휙휙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그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일어났던 재앙이라곤 이들의 결혼에 반대해 두명의 남성이 난입해서 식장에 인분을 뿌린 것뿐. 기대했던 블록버스터급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께서 결혼식장에 천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분들도 계셨는데 그날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보아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너무 공사다망하셔서 ‘타인의 인격이나 행복을 전혀 침해하지 않은’ 결혼식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던 게 아닐까 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기대했던 스펙터클은 없었기에 관람료라고 생각하고 두둑하게 준비했던 축의금이 좀 아깝지만, 두분 알콩달콩 잘 사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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