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장애물’들을 뛰어넘다보면 대화가 바로 끊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푸념조의 화제가 지나고 나면 그들은 자신도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그 변화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예전에는 거품에 젖어 양주 마시고 그랬는데 이젠 막걸리와 소주만 먹는다, 상황이 어렵다고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서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한다, 이번이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한다 등등.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얼굴은 예전보다 늙고 지쳐 보이지만, 눈빛만큼은 반짝인다. 충무로 거품 시대에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절박한 광채와 함께.
어쩌면 변화는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취재기자들에 따르면 <심야의 FM>과 <부당거래>를 비롯해 <초능력자> <페스티발> <이층의 악당> 등 개봉했거나 곧 개봉할 한국영화들은 빡빡한 한계 안에서 만들어졌지만 나름의 확고한 장점을 갖고 있다. 제작비에 비해 알맹이 없는 영화들이 양산되던 3∼4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영화의 체력이 어느 정도 강해진 게 확실하다. 이 또한 제작자를 비롯한 영화인들의 변화를 향한 의지 덕분일 것이다. 물론 스탭들에게 터무니없는 임금을 강요하는 우격다짐 제작방식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닥칠 게 틀림없다. 이렇게 호전된 상황에 맞춰 자본을 투여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정책적 지원을 해줘야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도 가능할 것이다. 제작자와의 술자리 말미에 앞서 언급한 식상한 세 가지 주제가 다시 튀어나왔던 것도 다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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