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문화창달을 위해 한국문예진흥원을 설립한 뒤, 유신운동자금 조성방안으로 당시 박정희 정권은 문예진흥기금을 영화관과 고궁과 각종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거두기로 했다. 지난 73년부터 입장료에서 6.5%씩 떼낸 이 돈은 유신시대도 한참 지난 뒤로는 예산이 부족한 문화부나 문화체육부의 행사비로 전용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중요한 쌈짓돈으로 활용됐다.
독특한 점은 이게 대부분 잘 알려졌다시피 영화관에서 걷혔다는 것. 지난해만 해도 245억원 가운데 179억원을 영화관객들이 냈다. 그 가운데 90억원이 영화쪽으로 다시 흘러왔다. 모은 돈의 절반을 다른 문화예술의 형제자매들에게 내주었으니, 영화는, 영화관객은 돈벌어 형제를 가르치던 개발기의 젊은 누이들과 닮은꼴이다. 그나마 영화쪽 환원이 이정도 된 것도 미국영화 직배로 영화토착자본이 말라가면서 시작된 일이다. 이런 사정을 언뜻 살피면, 2004년까지 걷기로 한 문예진흥기금을 2년 앞당겨 폐지하겠다는 기획예산처의 최근 발표는 그럴 법해보인다. 관객과 영화관에서 준조세 성격의 돈을 ‘뜯는’ 대신, 국가가 지원을 하겠다는 선언 아닌가.
그러나 속사정을 살피면 달라진다. 영화의 경우, 미리 문예진흥기금을 폐지함으로써 차질이 생긴 진흥기금을, 그 차액만큼 국고에서 지원해줄 테니 기금의 과실금으로 지원책을 펴나가라는 얘기인데, 그게 말처럼 간단치가 않다. 과실금이 한국영화가 지금 요구하는 정책을 펴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차라리 영화관에서 거두던 문예진흥기금을 이번 기회에 영화진흥기금으로 전환하는 것이 합당해보인다. 그것이 자국영화를 지킬 의지가 있는 나라들이 지금도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관람료의 11%를 입장세라는 이름으로 환수해 한해 6억3천만프랑 정도를 만드는 프랑스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텔레비전쪽에서 6억8천만프랑을 내놓는다. 두 돈을 합쳐서,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격인 국립영화센터가 영화지원에 쓴다. 독일은 조금 더 온건해서, 관람료의 3%를 걷지만 비디오테이프에 추가로 2%의 영화세를 붙여놓았다. 유독 산업적이고, 자본집약적인 영화라는 매체의 양육비가 비싼 탓이다. 전반적 문화예술의 금고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문예진흥기금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도 없지 않지만, 그 재원은 다른 방도를 통해 마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