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다시 두툼한 합본호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분량으로는 아주 작은 글 한편을 심어넣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련다. 9·11 테러 한돌을 앞두고, 스위스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우리의 해외기고가 임안자 선생이 이라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을 써줄 수 있다고 통지해왔다. 마침 이 다큐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고, 황혜림 기자가 가 있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도 초청돼 있었다. 그런 사정을 전달받은 선생의 편지가 나의 전자우편함에 도착했다.
“9·11 영화에 대해서 <씨네21> 기자가 쓴다니 잘된 것 같네요. 애초 전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제작자의 동기)와 사건 이후 영화감독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정치적·예술적 차원에서 밝히면서 현재 미국 정부의 중동정치에 대해 유럽에서 세차게 일고 있는 지성인들의 저항의식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건 사견이지만요, 9·11 같은 영화를 한 영화제의 테두리 안에서 쓴다면 많은 영화 가운데 하나로 다뤄지지 않을까 싶네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미국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집단적인 노력입니다.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부시 정부에 대한 슈뢰더 독일 총리의 계속되는 반대성명도 유럽연합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9·11 영화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영화전문지로서 <씨네21>의 가능성과 한계를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씨네21>이 생긴 동기에 아직도 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의 편지는 젊은 세대의 발랄함 못지않게, ‘기성세대’의 혜안도 우리 지면에서 보고 싶다는 말로 끝났다. 뒤를 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을 내다보며, 영화의 바깥을 널리 살피는 시선을 보여달라는.
스위스에서 날아온 해외기고는 그러다보니, 한가위 명절을 앞둔 우리의 <크리스마스 캐롤>, 아니면 <성냥팔이 소녀>가 되었다.
또, 이번호부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서는 김훈씨의 뒤를 이어 이 시대의 걸출한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씨가 귀한 글을 보여준다. ‘기성세대’는 여기서 보수를 뜻하지 않는다는 걸, 노파심에서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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