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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의 클로징]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가 향하는 곳

평생 무언가를 읽고 쓰며 살아왔다. 물론 듣고 말하며 살기도 했지만, 나라는 개인의 직업 영역에서 중요했던 건 확실히 읽고 쓰기쪽이다. 이걸 사회적 차원의 의사소통 네트워크 관점에서 풀자면, 어떤 저자가 쓴 것을, 논문이나 책 혹은 보고서나 기사 등의 형태로 읽고, 내 생각을 보태어 (또는 시초의 어떤 생각을 해결하기 위해 읽은 뒤 추가적으로 사유하여) 무언가를 쓰는 행위가 연속되는 셈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읽어주고 이왕이면 그에 대해 무언가를 써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렇게 쓰고-읽고-쓰기의 연쇄를 통해 내가 참여하는 사회의 의사소통이 어떤 식으로든 지속된다. 그런 사회를 가리켜 ‘학술적 사회’(academic society)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학회’라고 부르는 각종 단체가 정확히 그것이다.

지금도 나는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이 주로 학자들에 의해 읽혀서 그 결과가 다른 학술적 쓰기로 연결될 것을 의도하지도 딱히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 글은 필경 소수의 (그러나 거의 분명히 기존에 내가 썼던 논문을 읽는 학자들의 수보다는 다수일) 보통 사람들에 의해 읽힐 것이다. 그런데 이걸 읽은 그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사유 안으로만 머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종이로 된 잡지 형태로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거나, 온라인 게시물의 링크를 어딘가로 ‘퍼나르는’ 경우까지 있다면 이 글의 연결성과 파급력은 좀더 높아질 것이다. 그로써 간간이 재미 혹은 위로를 주기도 하고, 이왕이면 영감까지 선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인용’이나 ‘참고 문헌’으로까지 남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그러자고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쓰기가 향하고, 참여하는 사회는 그런 사회다.

내가 읽기와 쓰기를 통해 참여하는 이 두 가지 사회 가운데 어느 것이 내게 더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는 확연히 학술 사회로 기울어 있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직업이 그것이었고, 나름 야심찬 학술적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형으로 표현했지만 내 읽고 쓰기의 습성과 동기는 여전히 그곳에 토대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쓰는 빈도와 물량은 점점 더 대중매체가 형성하는 사회 혹은 시민사회쪽을 향한다. 게다가 듣고 말하기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학술적 사회의 예비 구성원을 교육하는 사회에 속해 듣고 말하기를 주로 했지만, 지금은 오락적이건 교육적이건 대중매체를 통해 듣고 말하는 분량이 훨씬 많다. 또 크게 보면 같은 ‘교육적 사회’이기는 해도 그 대상이 일반 시민을 향하게 되었다. 각각 학술, 대중매체, 교육이라는 서로 구별되는 의사소통 네트워크들에 참여해왔다고 할 때, 그간의 나는 학술-교육이 상호접속된 사회들로부터 대중(혹은 시민)-교육이 상호접속된 사회들로 점차 중심 이동해온 셈이다.이 과정과 결과에 나는 매우 만족한다. 그런 공부가 더 즐겁고, 그런 읽고 쓰기와 듣고 말하기가 더 역동적이며, 더 동기부여된 학생들에게 더 활기찬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지적 성과’가 가끔은 내 본향이랄 수 있는 학술적 사회 속에 투입되고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에 대해 반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있으면 좋은 일이고, 없으면 내 역량의 한계이거나 그들의 한계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