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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클로징] 추락의 해부

검찰의 과잉수사는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라도 한다. 반면 검찰이 사건에서 손을 떼버리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네 관대함은 더 더럽고 비열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추락의 해부>) 검찰이 또 스스로 추락했다. 한국은 사람을 6시간 감금해도 범인이 국회의원이면 벌금형에 그치는 나라가 됐다. 2019년 ‘패스트트랙 사건’ 당시, 국민의힘은 폭력으로 국회 회의 진행을 방해했고 일부는 다른 당의 한 의원을 감금했다. 1심 재판은 관계자들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세운 기준에 따르면 감금죄 하나만 해도 기본이 최저 ‘징역 6월’이고, 다수인이 위력을 행사한 경우는 형량이 가중된다. 그런데도 검찰은 항소를 포기해 피고인 전원의 벌금형을 굳혔다. 그 이전에는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가 있었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을 인정했다. 개발이익 4천억~5천억원을 예측했으면서도 1822억원만 공공에 배분하기로 한 업무상 배임은 물론, 사업자들이 정진상과 유동규에게 428억원을 주기로 약속한 사실까지도. 일부 무죄선고는 사실관계가 아니라 법리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과연 배임 액수는 정확히 산정될 수 없고 따라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까지는 적용되지 않는 건지,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은 기수 이후 계속되는 범죄(계속범)가 아니라 기수에 이르면서 종료되는 범죄(즉시범)이므로 공소시효가 지난 건지, 428억원 약정은 별도의 뇌물 범죄가 아닌 배임 범죄의 일부인지, 이게 1심으로 끝낼 만큼 만만한 주제들인가. 검찰은 법무부의 (정식 지휘도 아닌) 압박에 이 모든 걸 접었다. 그러고 나서 국민의힘에도 항소 포기를 대령한 것이다. 정권교체 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에 대한 항고 포기가 있었고 말이다. “검찰이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고? 예나 지금이나 한국 검찰은 정치권력의 하수인이다. ‘더 킹’이 아니라 더 킹받게 하는 간신이다. 구정권에 충성한 검찰은 신정권에도 충성하고, 정치권력은 ‘쟤가 받아먹었으니 우리도 받아먹겠다’는 강령을 달성한다. 옛날 옛적 ‘2002년 대선 자금 수사’라는 예외적 국면이 있었다. 여야 주류 정당과 재벌 기업의 연루자들이 대거 처벌받았다. 그걸 했던 검찰이 추락하기까지 이 나라에서 가장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측근들의 수감을 견뎠고, 수사를 훼방하지 않았다. 대국민 사죄하며 거취까지 걸었다. 집권자가 그랬기에 곧 이어진 한나라당 차떼기 수사에 명분과 파괴력이 실렸고, 겁먹은 정적들은 대통령 탄핵을 시도하다 후폭풍에 날아갔다. 이회창씨도 오늘날 방탄 대형을 펼치는 정치인들과는 달랐다. 다 책임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때부터 한국의 선거 풍토는 크게 바뀌었다. 그들은 원죄가 있었을지언정 더 청렴한 세상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다. 정치권은 자기편에 불리한 것은 객관적 증거나 기초적인 법리라도 부정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비호해놓고 “사법이 감히 정치에 끼어든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모든 부정부패가 까발려지고 척결되느냐, 서로서로 덮어주는 협잡으로 종결되느냐. 이 기로에서 검찰은 뒷문을 열어주고 재기 불능에 빠졌다. 누가 정치검찰을 움직이는 저 상전들에 대항할 것인가. 정치혁명 없이 검찰개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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