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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의 클로징] K뷰티? K뷰티 호러!
임소연 2025-10-23

바야흐로 K컬처의 시대다.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향한 열광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K성형 역시 K컬처의 일부로 잘 알려져 있다.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 노르웨이와 중국, 일본 등에서 온 학생과 교수진을 대상으로 한국 성형의 ‘테크노컬처’를 주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K뷰티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얘기해준 중국 학생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강연 중에 최근 유행하는 피부미용 주사시술을 언급했는데 하필 연어 추출물이 주성분이라서 노르웨이에서 오신 분들이 흥미로워했던 것은 여느 때와 다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이렇게 외국인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한국의 성형수술에 대한 내 연구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K성형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다행히(!) 그날 강연 후 받은 질문은 대개 한국의 의료 체계나 교육, 미디어의 영향, 미적 규범의 변화 등 진지한(?) 것들이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러다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해외 온라인 매체인 <디자인 옵서버>(Design Observer)와 성형수술을 소재로 한 보디 호러에 대한 인터뷰였는데 “거울아, 거울아: 떠오르는 ‘뷰티 호러’와 오늘날의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라는 제목으로 글이 나왔다. ‘뷰티 호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터뷰에서 영화 <어글리 시스터>에 대한 내 의견을 묻기에 피가 철철 나며 발가락이 잘리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성형수술을 받으며 혼자 마주했을 무언가를 함께 보며 느낄 수 있게 강렬하게 시각화하는 것이 ‘뷰티 호러’의 효용이지 않을까, 그 인터뷰를 하며 처음 생각해봤다. 성형한 몸이나 성형한 여자들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과 ‘목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목격자가 단 한명인 사건과 여러 명인 사건은 다르다. 목격자의 증언에는 힘이 있으니까. 성형수술을 했든 안 했든 ‘호러’를 함께 목격한 여자들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쩌면 처음으로 성형수술 이야기를 하면서 씁쓸하지 않았던 그 인터뷰 이후, 의문이 생겼다. 왜 K뷰티만큼 잘 알려진 K뷰티 호러는 없는 걸까? 그러던 중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하게도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목줄을 끊으려는 여성들에게>가 9개의 해외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고 그중 4곳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최연정 감독은 성형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상 한국 여성들의 탈코르셋 운동 자체가 유독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성형수술과 각종 외모 관리를 지겹도록 목격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K뷰티 호러가 없는 이유가 곧 있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