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일 대선투표일. 출구조사 발표를 앞둔 MBC 개표방송에 친숙하지만 의외인 두분이 등장했다. 유명 과학 유튜버 궤도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였다. 무려 ‘민주주의 이즈(is) 사이언스’라는 제목과 함께. 두 이과 남자가 설명하는 민주주의가 과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학의 역사를 보자. 궤도가 과학계의 “위대한 큰 형님”으로 소개한 아이작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일 뿐. 뉴턴의 질문은 “사과가 왜 떨어질까?”에서 그치지 않고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상계와 천상계에 공히 적용되는 보편적인 물리법칙으로서, 질량을 가진 두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법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천상계의 달과 지상계의 사과가 평등한 뉴턴의 물리학은 왕과 백성의 위계적 구분 대신 평등한 시민으로 구성된 민주주의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이어서 김상욱 교수는 뉴턴의 물리학조차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입증한 상대성이론을 언급하며 과학의 자정작용을 강조한다. 기존의 지식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오류를 찾아내며 그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과학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촉망받던 독일의 물리학자 얀 헨드리크 쇤과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줄기세포 과학자였던 황우석의 연구부정행위가 결국 밝혀져서 과학계에서 퇴출된 사례는 이 과학의 정신이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송에서는 “틀린 것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과학의 정신이자 민주주의의 힘”이라는 점이 거듭 강조되었다. 그렇다. 지난 정권이 틀렸음을 인지하고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이번에 일찍 치러진 대선이다. 과학과 함께 가는 민주주의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런데 함께 가기 위해서 맞아야 할 것은 방향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민주주의가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느릴 수밖에 없다. 이날 조기 대선이 가능하기까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마침내 탄핵시키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싸우며 기다려야 하지 않았나. 반면 과학은 따라잡기 벅찰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왔다. AI의 시대 과학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이즈 사이언스’를 위해 필요한 것은 느린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과학이어야 하지 않을까. (속도를 늦춰야 할 것은 노화만이 아니다!) 벨기에의 과학철학자 이자벨 스탕게르스는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이라는 책에서 이미 ‘느린 과학’(슬로 사이언스)을 제안한 바 있다. 느린 과학은 단순히 과학 연구를 천천히 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빠른 과학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져온 다양한 가치를 회복하여 지금과는 다른 과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현시키는 일이다. 과학이 느려진다면 누군가의 생명이나 일자리를 위협하는 과학을 인류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대신 더 많은 이들을 살리고 격차를 줄이는 다른 과학을 만들 시간이 생길 것이다. 느린 과학자는 시민으로서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도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이 이들의 손을 잡고 느리지만 단단한 민주주의의 길로 함께 나아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