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실망은 기대로부터 찾아온다. 실망(失望)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확히 그렇다. 바라던 바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낙심하는 것이니까. 같은 의미의 영어인 ‘disappointment’도 다르지 않다. 예정됐던 것이 실현되지 않았기에 낙담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런 낙담(落膽)의 다른 영어 표현인 ‘렛다운’(letdown)은 묘하게도 한국어와 발음이 유사하게 들린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뚝 떨어지는’ 느낌까지 꼭 닮았다. 사람들이 몸과 마음으로 생생하게 경험하는 무언가라서 그런 것 같다. 지난 몇년, 특히 최근 몇 개월간 수없이 많은 좌절과 실망을 맛봤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저런 수준이라고? 그걸 주변에 있는 이들이 그냥 놔두는 것을 넘어 동조하기까지 한다고? 누가 봐도 자명한 내란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이라고? 애써 가두었더니 판사가 나서서 풀어준다고? 높은 법대에 앉으신 고귀한 대법관들이 저리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는 대놓고 선거를 자기 맘대로 결정하겠다고 나선다고? 대통령 파면 후의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서는 권한대행을 탄핵해서는 안된다고 하던 자가 대뜸 물러나서 대통령 후보 자리를 탐한다고? 그런 사람을 위해 경선에서 이미 선출된 자기 후보를 주저앉히고는 입당 처리에서부터 후보 등록과 지명에 이르는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고? 그것도 다들 잠자리에 들어 있던 심야에? 이 문단 속 문장들 안에 등장하는 인물과 기관에 대해 딱히 기대하던 바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수많은 물음표마다 올올이 실망감이 날아와 박히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듯하다. 나는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대체 이들에게 뭘 바랐던 것일까? 사실 기대는 딱히 호감의 산물은 아니긴 하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 실망하게 된 것은 우리의 호감이 배반당했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매번 낙담하는 마음이 커서 자괴감이 들 정도에 이르는 것을 보면 이 실망의 크기는 기대의 크기와 정확히 비례하는 게 맞다. 아무리 그간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그런 짓들을 벌이지는 않으리라는 강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게 이토록 ‘큰’ 기대이고 ‘강한’ 희망이었음을 확인하는 이 매번의 순간이 우리를 복합적인 좌절감으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지만, 이들은 지독히도 나쁘다. 내장이 여러 번 추락해서 속이 상할 대로 상해버리는 상황을 또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결국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그 안의 이웃들에 대해 일말의 희망과 기대도 품지 않아야 한다는, 본능적이면서도 논리적인 결론에 이르게 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밉다. 그런데도 자꾸 미련을 떨치지 못하니 더 힘들다. 미움은 흔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죽도록 미워하는 일은 죽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