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은 본능 아닌가요?” 최근 북토크에서 받은 질문이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의 저자로서 여러 독자들을 대상으로 북토크를 해왔지만 여자 고등학생들만 모인 자리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여자의 본능,’ 아름답게 꾸민 여성이 등장하는 수많은 뷰티 제품 및 패션 광고가 전해온 메시지다.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 반대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책을 읽은 어떤 독자에게도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이 반가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새들과 춤을>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춤을 추고 또 추는 수컷 새들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 배에 노란 깃털이 가득한 어떤 수컷 새는 머리에 달린 몸 전체보다 긴 깃털을 사방으로 흔들어대고, 까만 몸통에 쨍한 파란색 깃털로 포인트를 준 또 다른 수컷 새는 나무 끝에 간신히 몸을 기대고 ‘폴 댄서’처럼 몸을 가로누운 채 날개를 움직여 변신을 하기도 한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한 수컷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암컷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내며 아홉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수컷 새의 화려한 깃털과 춤사위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이 영화에 나온 어떤 수컷 새도 암컷의 선택을 온전히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중 누구도 암컷을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나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상대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던가. 두 번째는 수컷 새와 확연히 구분되는 암컷 새의 외모였다. 암컷 새들은 하나같이 어찌나 칙칙하고 볼품이 없는지 짝이 될 수컷 새들과 같은 종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못생긴 배우자를 얻기 위해 수컷만 그렇게 ‘노오력’을 해야 한다니 언뜻 얼마나 억울할까 싶지만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만의 능력과 그 수고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새의 세계는 참 공정하다 싶었다.
“맞아요, 본능 맞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대개 수컷의 본능이죠.” 나는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의 욕망이 왜 사회적 산물인지보다 그것이 왜 남성의 본능인지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지난 시절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수컷의 종족 번식 본능은 주로 남자들의 외도와 강간을 너그럽게 봐주는 데 동원되었지만 사실 남자들이 잘 씻고 좋은 체취를 풍기며 외모를 매력적으로 가꾸어야 하는 이유 중 이만큼 강력한 이유가 또 있을까? 여자보다 남자의 결혼 의향이 더 높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생물학이 아닐 수 없다.
남성들 스스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본능임을 점점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외국 남성의 글을 보면 말이다. 그는 “요즘 세대의 결혼은 뭐가 잘못된 걸까. 남자는 여자를 믿지 않고 여자는 더이상 남자가 필요하지조차 않은 것처럼 보여.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라는 다른 남성의 글에 이렇게 답했다. “남자들은 이제 여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해. 많은 남자들이 호감이 가지 않거든.”
지금껏 성형수술을 연구하며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여자들을 만나왔다. 앞으로 그만큼 많은 남자들을 성형외과에서, 화장품 매장에서, 피부관리실에서, 네일아트숍에서 만나게 될까. 그런 날이 온다면 한번 더 성형수술 관련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