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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클로징] 게임 체인저
김수민 2024-10-10

내 기억 속 첫 번째 미국 대선은 1992년이다. TV 뉴스에 민주당 후보군이 소개되었을 때 후반부에 나온 한 젊은 후보를 보고 “대통령처럼 생겼네”라고 중얼거렸다. 이 비과학적 예언은 적중했다. 4년 뒤 맞이한 미국 대선은 ‘인생 선거’였다. 공화당 밥 돌 후보의 작은 정부론과 감세안이 복지국가의 원칙을 거스른다고 판단했고 이는 내 정책 체계의 1층에 자리 잡았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 민주당은 유럽의 좌파 정당에 비하면 보수적이지만 적어도 조세와 노동,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나중에’ 논하자며 뒷걸음질치는 정당은 아니다.

2020년 한국에는 자신이 진보라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혐오 정치의 세계화에 무딜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식견도 좁다. 트럼프의 모험이 북미 관계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 측면은 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체계적이지 못한 이벤트식 접근 때문에 북미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미국이 도발과 대화를 오가는 북한의 시간표를 바꾸기는 매우 힘들지만, 기회가 오면 치밀하게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에는 그나마 웬디 셔먼과 같은 대북 협상 전문가들이 있다. 과거 오바마 정부도 북한의 널뜀과 날뜀을 견디며 2·29 합의를 빚어낸 적이 있다.

다만 나는 바이든의 임기 역시 4년으로 끝나야 한다고 여겼다. 다수 대중은 86살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가 바이든 추대식으로 점철되면서 당혹스러웠다. 바이든이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트럼프의 입지도 단단해졌다.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젊고 힘차다”와 “사법리스크와 거짓 선동의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그래도 바이든이다”의 맥놀이판에서 후보를 바꾸는 쪽이 이길 것이라 내다봤지만 두 당 모두 바꾸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바이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이 후보를 바꿀 수 없는 상태에서 바이든만 빠져나간다면?

물론 바이든의 TV토론 참패와 트럼프 피격 사건은 돌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뇌리에서 사퇴 시나리오가 처음 피어난 것이 정말 그 이후일까? 그가 과연 자신의 건강 상태를 걱정한 적이 없었을까? 그는 1970년부터 내내 공직에 있었고 그랜드슬램을 하듯 상원의원과 부통령, 대통령을 거쳤다. 민폐를 무릅쓴 재선 도전보다 ‘막판에 큰 거 한방’이 더 끌리지 않았을까? (그의 머릿속이야 알 길이 없고 내 추정이 맞다 해도 그는 부인하겠지만) 어쨌든 결국 그는 해냈다. 여전히 승패 예측은 어렵지만, 트럼프의 가도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이 민주당 후보 교체임은 틀림없다.

이스라엘 문제를 포함해 미국 민주당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들이 있음에도 일단 대선에서는 승리하길 빈다. 카멀라 해리스의 당선이 윤석열 정권에 미칠 영향도 기대된다. 해리스에게 성평등에 관한 지적을 받았던 윤 대통령이, “해리스의 참모들은 생소하다. 제가 가르쳐야 한다”(9월3일 세종연구소 강연)라고 시건방을 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선거 직후 어떤 심정이 될지 궁금하다. 대통령측은 뒷담화 습관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들키고 나서 “대통령은 ‘해리스’가 아니라 ‘헬스’라고 말했습니다” 우기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