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현역 시절 일어난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김연아 선수의 한마디를 처음 들었을 때 ‘우문현답’이란 고사성어를 재연드라마로 시청하는 기분이었다. 격언 탄생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마주하며 실력을 갈고닦아 경지에 오른 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저런 걸까 하는 경탄과 다른 사람도 아닌 ‘김연아’의 말이니까 가치를 지니는 거 아니겠냐는 배배 꼬인 심보가 동시에 교차했다. 더위에 지친 탓인지 요즘 부쩍 ‘이걸 꼭 해야 하는 걸까’라는 잡념 속에 피곤한 나날이 이어지는 중이다. 더 편한 길이 있는데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 같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바보짓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는다. 그럴 때 문득 ‘그냥 하는 거지’란 말이 떠오르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할 일을 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마감에 허덕이는 목요일, 유튜브 쇼츠로 잠시 도망쳐 이런저런 영상을 뒤적이다가 오래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법정 스님을 봤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을 받은 법정 스님은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며 “답이 없는데 계속 의미를 찾으니 괴로운” 거라는 명쾌한 답을 전했다. 길의 끝에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일가를 이룬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비슷한 구석이 있나 보다. 이미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법정 스님의 성찰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김연아의 ‘그냥’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왜 살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의 전환.
삶은 사고의 연속이다. 살면서 겪는 많은 일 중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의외로 많지 않다. 나의 오늘을 결정짓는 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일어난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달린 셈이다. 반복되는 ‘그냥’의 중요성. 그런데 어쩌나. 나는 언제나 ‘왜’가 중요한 사람이다. ‘왜’가 해결되지 않으면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편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잡지 일을 꽤 오래 버틴 비결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잡지의 매력 중 하나는 페이지마다 각기 다른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페이지마다 이걸 누구에게, 왜 써야 하는지를 그려야 한다. 이유(왜)가 설정되면 방법(어떻게)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정확하게 묻고 전달하기. 어쩌면 그게 기자 일의 전부다. 설사 해결되지 않을, 답이 없는, 자신을 미궁에 빠뜨릴 질문이라 해도, 질문을 멈출 순 없다.
이번주는 ‘2024년 극장가 중간점검’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올해 상반기, 좁게는 여름영화들을 향한 질문을 던졌다. 이런 분석들이 실은 대체로 공허하게 마무리된다는 걸 이미 안다. 한계도 인지하고 있다.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도달한 분석 역시 사실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어쩌면 진리와 진실이란 녀석들은 관측도, 통제도 되지 않는 혼돈의 영역에서 탐구자의 발버둥을 비웃고 있지 않을까. 가벼운 회의감에 잠기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피곤하고 불편하고 지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할 수밖에 없다. 왜냐고? 오늘의 극장이, 한국영화가, 영화산업이 ‘왜’ 이런 상황에 놓였는지 질문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왜’를 물으며 의미를 찾아 헤매는 것이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그냥’이다. 이 피곤한 짓을 꼭 해야 하는 걸까. 툭툭 털고 일어나며 되뇌는 한마디. 그냥 하는 거지. 안간힘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