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건국이 오로지 이승만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영화 <기적의 시작>이 공영방송 KBS에, 그것도 광복절에 편성된다고 한다. 이 글이 나갈 시점엔 이미 전파를 타고 난 뒷일이 될 듯하지만, 본래 일정표로는 금요일인 <독립영화관>을 하루 앞당겨 추가 편성하면서까지, 제작진이 방송권 구매를 거부하자 담당 국장이 기안하여 전결하는 기괴한 방식으로, 끝끝내 방송을 고집하고 있다 하니 기가 찰 일이다. 역사에 무지한 광신도들의 기적(奇蹟)을 작위하기 위해 다수가 기함(氣陷)할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 영화로 의도했던 건 실은 역사적 사실을 다룬 진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헛웃음을 자아내는 허구적 코미디가 아닐까 의심케 하는 대목 한 가지. 제작자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독립영화 인증을 신청했지만 영진위는 “객관성 결여와 설득력 있는 논증 제시 부족” 등을 이유로 인정을 거부했다는 것. 그런 영화가 공영방송 KBS의 <독립영화관>에 버젓이 걸린다면 그야말로 자기희생적인 풍자극이 아닐는지.
KBS 관계자가 해명하길 “편성본부에서는 독립적인 편성권에 의해 방송 편성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굳이 ‘편성본부’와 ‘편성권’을 콕 짚은 건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작 자율성이란 편성할 독립영화를 선정하는 데에 편성본부가 제멋대로 편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게다가 독립영화도 아닌 것에 굳이 일반적인 구매가 이상으로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살릴 “다양성”이란 게 무엇인가? 이건 상식과 공정성을 넘어 배임 여부까지도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KBS <독립영화관>은 2011년 1월에 정규 편성된 이후 600편이 넘는 독립영화를 소개하여 공영방송과 수신료의 가치를 입증해온 프로그램이다. 극장 상영관도 잡기 어려운 독립영화에 가히 천금 같은 기회이며, 극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양질의 독립영화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해주는 시청자 복지까지 실천된다. 2019년 <한국일보> 보도에 의하면 방영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담당 PD와 작가들은 각종 시사회와 국제영화제까지 찾아다닌다. 발품을 들여야 좋은 작품을 소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기적의 시작> 편성은 그들이 해온 공영방송다운 행보에 침을 뱉는 모욕이고, 오로지 신념과 자부심으로 그 자리를 지켜온 독립영화인들에게 가하는 어이없는 폭력이다.
이 정부 들어 워낙 기이한 일이 많아지다 보니,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듯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바꾸는 기적 같은 것들이 워낙 많다. 이런 놀라운 행적은 꼼꼼히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마치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 그들이 애써 시작한 기적이 쌓여 그들의 파멸을 촉발시키는 기원이 되리라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주여,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