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병 제도는 전쟁과 군대로 인한 제반 논의가 특정 소수집단의 문제로 축소되는 체제다. 이에 반해 보편적 의무로 운영되는 징병제는 어쩔 수 없이 전 사회적인 관심사가 된다.”(‘징병제는 최선의 선택’, 정희진, <한겨레> 2013년 10월11일) 한때 징병제는 국민을 상명하복 질서에 총동원하고 전 사회를 병영화했다. 하지만 군에 대한 문민 통제가 뿌리내릴수록 징병제는 민주주의와 어울리게 된다. 병사 하나하나를 무사히 민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국가와 군의 가장 중요한 작전이 된 원동력은, 군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온 국민에게서 나왔다.
한국 사회는 최근 연달아 작전에 실패했다. 지난 5월 수류탄 훈련 도중 훈련병이 사망하고 부사관은 중상을 입었다. 2019년 실수류탄 훈련이 부활했을 때 시민들은 토론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 어느 훈련병은 완전군장 차림으로 구보하고 팔굽혀펴기를 하다 숨졌다. 완전군장 상태에서는 걷기만 한다는 건 20여년 전 훈련소에도 있었던 규정이다. 군이 한국 사회의 퇴행을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아직 관련자들의 재판도 열리지 않은 채 해병 순직 사건은 한국 사회에 수치심을 안기고 있다.
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998년 자결한 박모 해병대원이 상관에게 심한 가혹 행위를 당했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11년은 끔찍한 시간이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 채 해병의 경우 수색에서 순직에서 이르는 과정은 은폐되지 않았고 그에게는 보국훈장이 추서다. 그렇지만 그가 무엇 때문에 보호 장구 없이 급류에 들어갔는지를 밝히는 일은 1년 넘도록 늘어졌고, 그가 떠난 길 뒤에는 외압의 발자국들이 뒤엉켜 있다.
정권 관계자와 친여 인사들은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 이런 사건에서 군은 수사권이 없다. 해병대 수사단이 관계자들의 혐의를 적시한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도 군 당국은 다수 사건에서 혐의를 적시했고 완전군장 훈련병의 사망 사건에서도 그랬다. 채 해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국방부도 모든 이의 혐의를 삭제하진 않았다. 혐의 적시가 적절하지 않다고 쳐도 조사 결과에서 죄목만 빼면 되는데, 국방부는 경찰로 이첩된 기록을 회수하고 재조사를 벌여가며 수사 개시를 지연시켰다. ‘정식 수사는 군 바깥에서 한다’는 개정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거스른 것은 해병대 수사단이 아니라 국방부인 것이다. 혐의 적시를 하느냐 마느냐는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남은 건 ‘특정인 구하기’밖에 없다.
임성근 전 사단장이 무혐의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는 더 큰 의구심을 만든다. (그가 지시했다는 ‘바둑판식 수색’이 수중 수색이 아니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저렇게 무혐의를 받을 수 있는데도 왜 국방부는 그 난리를 피웠을까?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도 검찰이 불기소하거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게 현대 형사사법체계다. 더구나 해병대 수사단의 활동은 ‘입건 전 조사’였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국방부 군사 및 법률 전문가들이 집요하게 억지를 쓴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추어’의 냄새와 ‘나(우리)만이 장성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는 오만이 어른거린다. 이 공작의 VIP가 누구인지 끝까지 수색하기. 7월19일 청계광장 분향소에서 특명 작전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