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을 이길 수 없다, 는 말이 이렇게 와닿은 적 없는 7월이었다. 7월1일, 시청역에서 발생한 끔찍한 교통사고는 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7월11일, 긴급방송으로 진행된 1060만 유튜버 쯔양의 피해 사실 폭로는 그의 밝은 에너지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이어지는 고발 속에 사람들은 사이버 렉카들의 추악함이 상식 선 따윈 가뿐히 넘어설 수 있음을 확인했다. 7월13일,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의 기습 선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축구 팬들에 그치지 않는 건 책임지지 않는 결정권자에 좌우되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 불투명한 시스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7월24일, 법인카드 유용의 신세계를 보여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청문회는 현 정부의 현실 인식을 단적으로 표상한다. 이윽고 7월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명은 사실상 도덕적 파탄 선언이나 다름없다.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불러올 파장은 또 어떤가. 쓰다 보니 사건사고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지면이 꽉 찰 지경이다. 불행, 불의, 부도덕을 매일 관람 중인 한국 사회는 분풀이하듯 미디어의 콜로세움을 세워두고 살벌한 도덕 쟁탈전을 벌인다. 뉴스가 뜰 때마다 우리가 정의와 상식이라 믿고 있는 것들이 연신 무너지고 있지만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게 현실에서 점점 리얼리티가 증발 중이다.
암울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올해는 시큰둥할 줄 알았던 파리올림픽에서 연일 드라마를 쓰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격, 양궁, 펜싱, 그러니까 활, 총, 칼로 하는 모든 종목에서 전투 민족의 역량을 뽐내며 도파민을 자극 중이다. 기쁨의 드라마도, 부도덕의 다큐멘터리도 방향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론 대중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뉴스들이다. 8월의 첫째 날, 새삼 되돌아보니 7월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도파민 폭풍의 달이었다. 극장이란 장소에 차단된 채 보는 영화가 밋밋하게 단순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어쩌면 최근 여름 블록버스터가 확연히 줄어든 건 단지 시장의 변화나 축소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도처에 영화보다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 난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극장을 갈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복잡하고 머리 아픈 현실을 피해 스크린 속으로 도피했다면, 2024년 한국에서 몇몇 영화들은 단순명료하기에 (정확히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복잡하기에) 거꾸로 우리에게 차분히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제공한다. 때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대상으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다. 뉴스로 뉴스를 덮는 현실의 사건사고는 너무 많고, 빠르고, 자극적이고, 단편적이라 도리어 사유의 기회를 앗아간다. 영화를 본다는 건 현실로부터 달아나는 게 아니다. 도리어 밀착된 자극으로부터 거리를 벌려 잃어버린 리얼리티를 회복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흐름 속에 있을 땐 흐름이 보이지 않는 법, 이번주도 거센 현실의 강 한가운데 마련된 쉼터 같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생각의 틈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2024년 여름 한국에서, 현실은 영화를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