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목소리도 있다. SF 소설가 테드 창은 “인공지능은 의도와 지능이 없다”고 일축한다. 데이터의 축적으로 결과물을 유사하게 모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창작에 관한 한 인간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예술은 선택의 결과물이며 이것이 흡인력을 만든다”는 테드 창의 견해는 ‘인간과 창작’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강조한다. 두 사람의 말은 얼핏 대립하는 의견처럼 들리지만 실은 유사한 인식을 공유한다. 조지 루카스와 테드 창 모두 AI를 자아의 확장이 아닌 기술 발전으로 한정하고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AI는 마치 전기 발명과 같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혁신의 정도가 워낙 파격적이라 기존의 삶의 방식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AI가 인력을 대체하고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거란 두려움이 엄습 중이다. 실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건 그다음이다. 지금 우리는 AI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받아들일지를 고민해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 다른 각도에서 질문해보자. 인공지능의 생산물과 인간의 창작물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축적과 모방의 결과물과 순수한 창작의 결과물을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순수한 창작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언젠가 인간을 뛰어넘을지도 모를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답은 인공지능에 있지 않다. 인간을 인간답게, 나를 나답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이미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가 던져온 질문. 역시나 답은 없다. 애초에 이건 답이 아닌 과정에 발을 디디기 위한 질문이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점점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이미 대중적인 제재가 먼저 가해지는, 도덕쟁탈전이 반복되고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릴 시간 따윈 없다. 집단 린치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문제가 터지면 빠르게 손절하고 논란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상이 0과 1의 조합처럼 다뤄지는 건 곤란하다. 피곤하고 번거로워도 시비를 가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결론에 이르는 각기 다른 과정, 그 지루한 시간에 있다고 믿는다. 뒤돌아보니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8할은 쓸데없고 비생산적인 고민들의 시간이었다. 낭비와 낭만 사이. 부디 미래의 나도, 영화도 이런 잉여로운 과정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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