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편하게 해.” 때로(사실 거의 대부분) 말은 내용보다 발화자의 중력에 끌려간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위치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로 소화될 수밖에 없다. 목요일 마감, 이번주도 어김없이 영혼이 탈탈 털린 뒤 잠시 넋을 놓고 멍 때리는 중이다. 원래 한창 바쁠 때 맹렬하게 딴짓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라, 한마디 숨을 크게 내뱉으며 데스크에 올라온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이번주 내내 뱉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편하게. 힘 빼고.
그러고 보니 요즘 유난히 기자들에게 이런 표현을 자주 던졌다. 그럼에도 정반대로 쉼표 하나 빈칸 하나 없이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정성으로 꾹꾹 눌러 쓴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차오른다. “힘 빼”라는 말이 “제대로, 열심히 하라”고 들렸던 걸까. “편하게 해”라는 말 뒤에 나도 모르게 “하지만 잘해야 돼”라는 행간을 추가한 건 아니었나.
개편 이후 하고 싶은 아이템이 꽉 차 있다. 강렬한 의지까지 불태우지 않아도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관리자의 미덕은 옥석을 판별하여 힘을 집중하는 넒은 시야겠지만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일단 다 시작해버리고 만다. 그 결과 <애콜라이트>의 이정재 배우와 <그녀가 죽었다>의 신혜선 배우, <The 8 Show>의 한재림 감독과 류준열 배우, <졸업>의 안판석 감독과 박경화 작가, <하이큐!!> 세명의 편집자도 모자라 가수 김윤아의 긴 인터뷰까지 한번에 소화한, 책 한권이 나왔다.
여기에 가수 이승윤의 리스트나 뮤지션 김사월의 에세이처럼 소소한 읽을거리는 물론 칸영화제 개막 취재 리포트와 <애콜라이트> 보기 전 가이드가 되어줄 <스타워즈> 총정리, 한국 영화산업 구조 진단 같은 굵직한 기사도 썼다. 개봉영화 기획과 비평까진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매주 꽉꽉 찬 아이템 때문에 아직도 간혹 헷갈리는 분들이 있는데, <씨네21>은 주간지다. 막상 만들면서도 이 정도 라인업을 한주에 소화한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이번주가 그랬다.
어쩌면 힘을 빼자, 는 말은 아직 할 만하다는 다짐이었을까. 기자들에게 던져보아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친구는 없다. 아니, 힘을 빼자고 의식해봐도 다들 그렇게는 못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책임감, 자존심, 성취욕, 자기만족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문득 이번주 인터뷰에 실린 말들이 떠오른다. 이정재 배우는 “나를 지켜보는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 관객들이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순간 그다음 챕터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드라마작가는 이 시대의 마지막 문학가라는 사명을 잊지 말라”는 안판석 감독의 말은 뜨거울 정도다. 이렇게 보니, 세상은 각자의 자리에서 매사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 <씨네21>의 간절함도 그 한자리를 지탱하고 있을까. 오늘따라 <씨네21> 기자들의 요령 없는 전력투구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