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IT업계 여성 여러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IT산업의 동향 및 미래 전망과 함께 업계 내 성차별 문제와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성평등 이슈 등에 대한 현장 종사자들의 경험과 생각을 듣고 싶어서였다. 경력 10년을 기준으로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이 두 그룹 사이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경력 10년 이상의 여성 개발자들이 공학 전공자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여성 기술 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일·가정 양립과 관련한 조직 내 성평등을 얘기했다면 경력 10년 미만의 개발자들은 공학에 한정되지 않는 전공에 업무 또한 기획부터 개발까지 다양했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만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경력 10년 미만의 개발자들이 주로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라는 사실에서 감이 온다.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항해 일어난 페미니즘 대중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맞은 여성 청년들이다. 디지털성폭력을 비롯하여 디지털 공간의 혐오와 갈등을 일상적으로 보고 듣게 된 세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성희롱과 챗봇의 대화에 포함된 여성 및 소수자 혐오 발언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드는 기술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주로 자연어처리, 인공지능 챗봇 개발,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 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으며 개발 업무뿐만 아니라 데이터 관리, 서비스 기획 등까지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편의상 ‘개발자’로 칭하기는 했으나 개발자가 아닌 이들이 더 많았다. 이것은 최근 인공지능 업계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기까지는 개발자로 불리는 이들뿐만 아니라 데이터 전문가와 기획자, 마케터 등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전공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소위 문·이과의 잣대로 보자면 그간 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져온 문과 출신의 진출이 눈에 띈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내가 기술과 사회가 맞닿는 곳에서 고민할 때 만났던 테크 업계 여자들이 대개 문과 출신의 1980~90년대생이었던 것이. 이들에게서 나는 사회 속 기술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더 나은 기술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그때마다 ‘문송’(문과라서 죄송) 대신 ‘문감’(문과라서 감사)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테크 업계에 문과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진다면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이 만들 사회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이과 여자로서 세상의 문과 여자들에게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