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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파묘> 곁에서) 별점을 파헤치다 마주한 것
송경원 2024-03-01

별점은 영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자를 넘지 못하는 한줄 평에서 굳이 미덕을 찾자면 명확한 입장과 직관적인 반응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요즘은 이마저 더 빠르게 확산시킬 통로가 널렸으니, 검증된 레거시 미디어의 전문성과 공신력을 차별화 요소로 꼽을 수 있겠다. 물론 그 와중에도 빼어난 통찰력으로 시인처럼 한줄에 핵심을 관통하는 문장을 뽑아내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별점은 본질적으로는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하는 모순된 작업이다.

별점의 핵심은 결국 데이터다. 데이터는 축적을 통해 위력을 발휘한다. 자연스럽게 별점의 무게는 영화 한편을 관통하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개별 평자의 축적된 감식안 쪽에 쏠린다. 일관성 있게 꾸준히 별점을 쌓아가는 평자의 별점이 신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때론 이런 흐름이 역전되어 개별 영화에 대한 평이 아니라 그걸 잘 판별하는 평자에 대한 평가로 소비되기도 한다. <파묘>의 안과 밖을 둘러싼 반응을 보며 새삼 별점의 효용에 대해 생각 중이다.

별점과 20자평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부표는 발견한 이들에게 이리 와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연결된 줄을 따라 바다 밑으로 잠수해 들어온 이들이 정성껏 준비한 긴 글을 확인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신호. 일종의 안내 표지판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저 한명의 평자로 활동할 땐, 추가로 긴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별점과 20자평을 쓰지 않으려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모든 기자가 (평가하면서 동시에 평가받는)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데, 홀로 책임을 미룬 채 도망쳤던 게 아닌가 싶어 괜히 마음이 무겁다.

서 있는 위치가 바뀌면 시야도 달라진다. 잡지의 향방을 책임지는 편집장 입장에 서보니 별점과 20자평만큼 효과적이고 강력한 지면도 없다. 널리 빠르게 퍼져나가는 평은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 힘 덕분에 제대로 이야기해볼 판이 깔린다. 사실 별점은 결론짓고 문을 닫는 에필로그가 아니라 과정을 소개하기 위한 프롤로그가 되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건 점수를 매기고 줄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평자라도 별점을 통해 입장을 밝힌 뒤엔 어떻게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경로’를 설명해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한다. 영화가 소비되는 상품을 넘어, 삶과 문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오직 각자의 입장을 책임지는 태도에 달렸다.

뒤늦게 <파묘>를 보고 오랜만에 별점을 달았다. 기자들의 호평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더 많았다. 거꾸로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어떤 부분이 그토록 좋았는지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품었던 이들에게 이번주 이우빈 기자와 김소희 평론가의 글이 좋은 답변이 되리라 기대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흥미로운 문제작이 지핀 불씨를 가능한 한 오래 가지고 놀아볼 생각이다. 그리하여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너의 의견이 궁금한’ 토론의 장이 열리길 희망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을 발견하고 ‘No’에서 ‘Yes’로 (혹은 그 반대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줄 비평을 기다리며, 입을 무겁게 하고 (지면과) 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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