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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신발 끈을 고쳐 매며 생각한 것
송경원 2024-02-02

신발 끈이 자주 풀린다. 잘 꾸미고 다니는 편도 아니지만 늘어진 신발 끈을 치렁치렁 끌고 다니는 행색마저 못 본 척 지나가긴 쉽지 않나 보다. 끈 제대로 묶으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번씩 듣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게 꽤 재밌다. “너 신발 끈 풀렸어”라는 짧은 말에도 미세하게 색과 두께가 다른 감정이 실린다. 넘어질까 불안한지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쓰러움과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있다. 간혹 답답함 섞인 푸념이 들려올 땐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물론 세상은 내 풀린 신발 끈 따위는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바쁘게 돌아간다. 그래서일까. 잠시 쭈그려 앉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새삼 감사하다. 풀린 신발 끈이 아니었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생각, 대면하지 않았을 감정들이 그제야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명절이 되면 으레 하는 일들이 있다. 주간지 입장에선 그중 하나가 합본호 제작이다. 2주치 분량을 만드는 큰 이벤트인 만큼 적재적소 어울릴 아이템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올해도 오래 공들여 섭외한 배우의 긴 인터뷰부터 명절 연휴를 공략하는 영화 소개, 깊은 사유의 씨앗을 던질 비평, 마음을 달랠 에세이, 자잘하고 가볍게 시간 때우며 읽을거리까지 단단히 준비를 마쳤다. 다만 올해는 조금 특별한 기획에 힘을 쏟았다. 지난 1월19일 세상을 떠난 이두용 감독을 조망하는 특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설 합본 특대호에 어울리는 아이템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감독이 돌아가신 주에 바로 다루지 못했으니 한 박자 늦은 감도 있다. 그럼에도 밀려오는 주간 마감의 파도를 애써 무시한 채 잠시 쭈그려 앉아 생각해본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 극장에 걸릴 한국영화가 줄어들고, 박찬욱, 봉준호를 잇는 젊은 감독이 없다는 푸념이 습관이 되고, 더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영화관으로 모이지 않는, 지금이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흔들려왔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땐 할 수 있는 일이 적었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정작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흐릿해진다. 역량과 욕망 사이에서 헷갈릴 때, 마치 새해 선물처럼 '해야 할 일'이 우리를 찾아왔다. <씨네21> 편집장으로서 올해의 목표가 있다면 한국영화의 ‘지금’을 말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고민하려 한다. 정상 위의 영광보다는 출발점의 열정에 동참하고 싶다. 그 첫걸음으로 필요한 일 중 하나가 지금 이두용 감독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흘러간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사라진 전설에 대한 추모가 아니다. 어느새 사라져버린 한국영화의 박력과 역동을 이 자리에 다시 불러오려는, 결연한 초혼(招魂)의 장이다. 본격적으로 뛰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며 신발 끈을 고쳐 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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