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이 안 써진다. 소질이 없는 걸까, 적성에 안 맞는 걸까. 가슴으로 써야지 하다가도 마감이 다가오면 어느새 가슴이 아니라 손가락이 자동기술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떨까. 마감과의 씨름은 글 쓰는 자들의 숙명이지 싶어 올해 산문집을 출간한 세명의 작가들- <또 못 버린 물건들>의 은희경, <이적의 단어들>의 이적,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의 박상영- 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았다. “글이 안 써질 때 나를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1995년에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발표하고 지난해 100쇄를 찍은 베테랑 소설가 은희경은 “안되는데 붙잡고 있지는 않는다”면서 환경을 바꾸고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상영 작가의 대답도 끄덕끄덕 공감하기 충분했다. 나를 충격에 빠뜨린 대답의 주인공은 이적이다. 과거 <씨네21>에 ‘이적표현물’을 연재하기도 했던 뮤지션 이적은 글이 안 써질 때가 “없다”고 했다. 그럴 수가 있나? 정말? 음악이 안 써질 땐 어떻게 하냐고 물었어야 했나? 추석합본특대호의 야심찬 특집 ‘에세이스트가 된 스페셜리스트’ 3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작가의 방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10월2일이 대체휴일로 지정되면서 올해 추석 연휴는 6일로 길어졌다. 긴 연휴가 지루하지 않도록 이번 호도 정성 들여 만들었다. 9월27일에 동시 출격하는 세편의 한국영화 <거미집>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김지운, 강제규, 김성식 감독을 만났고, <씨네21>의 비평, 에세이, 칼럼 지면에 글을 쓰는 8명의 필자들에게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들어보았으며, 지난 9월18일 눈감은 배우 변희봉의 추모 기사도 실었다. <플란다스의 개> <괴물> 등 그와 네편의 작품을 함께한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오랫동안 흠모해온 배우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길게 들려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소중한 마음을 독자들에게 나누어준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0월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관람을 도울 10편의 추천작도 소개한다. 한 가지 예고를 하자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장 일대에선 <씨네21>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판(이자 한정판)을 만날 수 있다. 1996년 1회 영화제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을 무사히 통과해 3년 만에 정상 개최됐던 2022년 27회 영화제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방대한 역사를 희귀한 사진 가득한 화보로 정리했다. 판형까지 키운 부산국제영화제 무가지 특별판도 추석합본특대호와 함께 대박나길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송강호가 연기한 김열 감독에게 깊이 감정이입하며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봤는데, 영화에서 배우 한유림(정수정)이 김열에게 “감독님, 저 피곤해요” “감독님, 저 진짜 힘들다고요!”라고 눈에 힘주어 말할 때 나는 그만 환청을 듣고 말았다. “편집장님, 저 진짜 힘들다고요!” 이번주도 뜨겁게 불태웠다. 아주 활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