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 실패를 빌미로 불거진 ‘전북 지역 혐오’를 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경북 구미에서 사반세기쯤 살았다. 대구경북이 겪는 곤경을 호남이 당해온 차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툭하면 지역 혐오에 노출되는 처지는 점점 비슷해진다. 고작 ‘선거 결과’가 혐오의 근거가 되고, 지역 내의 다양성과 활력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혐오는 어느 일방의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역 안에는 이견을 무시하고 지역 전체를 참칭하는 다수파가 있고, 지역 밖에선 지역을 통째로 싸잡아 매도하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 종종 ‘박정희 기념 공공 사업을 반대하는 구미시의회의원’으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구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군요”라는 식의 댓글은 거의 달리지 않았다. 광신자들의 도시로 몰아가는 혐오만 난무했다(서울에도 떡하니 박정희기념관이 있으면서). 2016년 5월에 실시된 구미시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할가량이 당시까지 진행된 박정희 기념사업을 두고 ‘과하다’고 평가하며, ‘검소하게 진행’하거나 ‘민간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반대나 우려가 ‘극소수 좌파’의 것이 아니라는 진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세력은 사업을 강행했고, 민주당 세력은 방조했으며, 박정희 기념사업 뉴스가 나갈 때마다 시민들은 손가락질받는다. 안에서는 문제의 사업을 확대하고, 밖에서는 지역민을 매도한다. 잼버리 논란처럼 말이다.
지역 혐오는 안에서도 나온다. 얼마 전 대구 지역 일군의 단체들은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타 지역 한 사회단체 간부는 행사에 참가하기 앞서 SNS에 “대구와 경북은 정치양아치들의 원천”이라고 썼다. 이에 질세라 행사 도중 관계자들 사이에서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단언이 불거졌다. 안팎을 향해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당신들의 잣대는 ‘국민의힘 지지율’인데, 지역 내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갔을 때는 뭐가 나아졌던가. 2018년 지방선거 결과 당시 대구 기초의원 당선자의 4할가량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 후 4년간 이들 사이에서는 갑질, 폭언, 공금 유용, 연설문 표절 등 다종의 사고가 터졌다. 그동안에도 그 당 지지자 다수는 “국민의힘쪽이 다 해먹는 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이제 두당에 대한 지지를 ‘같은 바구니’에 넣은 것으로 친다. 하지만 양당 도합 '90% 콘크리트' 앞에 절망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비슷비슷하다’는 진리 앞에 달관할 뿐이다.
둘째, 가령 퀴어 퍼레이드가 서울 다음으로 가장 먼저 시작된 지역이 대구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역 언론계와 예술계의 독립투사 같은 존재들은? “선거에서 맨날 진다”는 투덜거림이 “정치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는 자부심을 해친다면, 선거 전후의 지역사회는 더더욱 끔찍해지는 것이다. 경상도든 전라도든 다른 어떤 지역이든, 저마다 오래 굴레를 써왔지만 그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었다. 독점과 혐오를 뚫고 지역의 성취와 가능성을 긍정해온 모든 이들을 응원할 때다(특히 이 기회를 빌려 새만금 갯벌 보존에 나서온 전북 주민들의 승리를 빈다). 우리는 모두 ‘다양성의 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