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점을 세 가지 말해보겠다. 첫째, 로고가 아름답다. 박물관의 외관을 담백하고 기품 있게 표현한 선들이 멋있다. 둘째, 앞마당 전경이 시원스럽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마음도 얼마간 넓어지게 마련이다. 움직임도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린이들은 반드시 뛰게 된다. 셋째, 어린이가 많다. 정책이나 실제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이 공간이 어린이를 환영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린이만큼 이 문제에 민감한 사람은 없으니까.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어린이를 많이 보았다. 식당에서 어린이 일행이 오르르 몰려 다녔다. 동행한 어른들이 키오스크와 씨름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자리를 맡아두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구누구는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란히 앉은 어린이 셋은 말없이 넓은 창 너머 푸르른 정원을 구경했다. 그 눈에 무엇이 담기고 마음에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전시보다 이 풍경이 더 선명하게 기억될지도 모른다.
전시장 안에서는 지친 남매를 만났다. 둘은 엄마가 전시를 보는 동안 의자에서 쉬다가 엄마가 이동하면 근처 의자로 터덜터덜 걸어가 털썩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사실 그 정도로 쉬면 몸이 힘든 건 아닐 텐데. 내 입술에 잔소리가 들락날락했다. 이렇게 재미있고 귀여운 전시를 좀 잘 보라고. 하지만 정작 엄마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아이들을 채근하거나 하지 않고 느긋한 걸음으로 꼼꼼하게 유물을 구경했다. 그건 보기 좋았다. 기념품 가게에서도 재미있는 어린이를 만났다. 엄마엄마 노래를 부르던 어린이는 결국 거의 “꽥”에 가까운 소리로 엄마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정확한 발음과 반듯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정말 멋져요.” ‘정말 멋진’ 호랑이 목각 인형을 사달라는 뜻이었다. 좋은 연기였으나 이 엄마도 익숙한 듯 “응”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역사 교실 같은 데서 온 어린이들이 복도에 조르르 앉아서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누구는 받아적고 누구는 졸았다. 한쪽에서는 악악 우는 아기를 아빠가 안고 엄마가 달랬다. 그 옆으로 한 부부가 모처럼 여유를 즐기는 듯 웃으며 유아차를 밀고 지나갔다. 아니, 저 집 아기는 동료가 이렇게 절규하는데 어째 조용하지? 슬쩍 보니 그는 자고 있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유아차 안에서. 박물관은 잠을 자기에도 좋은 곳이구나.
김서울 작가는 <박물관 소풍: 아무 때나 가볍게>에서 박물관이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에 습도에 조도를 유지”하는 곳, “무엇보다 음악이 없”는 곳이라고 썼다. 박물관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해박한 지식을 절대로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모조리 들통나가면서 전국의 국립, 시립 박물관들을 소개한다. 그는 대구박물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을 보며 박물관이 “포용적인 장소”라고 썼다. 로비에는 빛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정답게 오가는 그 풍경을 그려본다. 나는 소풍 갈 박물관의 목록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