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를 꼬옥 안아주세요>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봤다. 영화 포스터에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한 인형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노인돌봄 로봇 ‘효돌이’다. 업체 공식 웹사이트에는 효돌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여성 노인의 사진 아래로 “24시간 부모님 곁에서 정서·생활·인지 건강을 도와주는 AI 돌봄 로봇”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효돌이는 음성으로 복약 시간 알림이나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치매예방 퀴즈를 낸다. 종교말씀이나 노래, 이야기 등을 들려주기도 한다. 노인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다가 이상이 있으면 보호자에게 알리는 기능도 있다. 유용해 보인다.
‘꼬옥 안아달라’는 감성적인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덤덤했다. 그래서 참 좋았고 다행이었다. 돌봐줄 사람 하나 없이 로봇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인을 보며 마음 아파하거나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영화는 내가 그런 감정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첫 장면부터 한 할머니 집에 사회복지사가 방문해서 효돌이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는 어수선한 장면이 펼쳐졌다. 영화 내내 효돌이를 만든 업체 직원들의 인터뷰와 함께 그들이 효돌이의 몸에서 기계장치를 꺼내 고치는 모습 그리고 직접 효돌이를 사용하는 노인들과 통화하는 모습 등도 꽤 자주 등장했다.
흔히 로봇이 등장하는 SF영화는 로봇의 의식이나 욕망, 고뇌 혹은 로봇과 인간의 일대일 관계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효돌이라는 로봇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인간들을 두루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돌봄 로봇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돌봄과 로봇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원래 제목이 ‘노인과 로봇’이었다는 말을 듣고 왜 바꾼 것일까 의아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효돌이라는 로봇은 노인과 단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효돌이는 꼭 7살 아이의 모습이어야 했을까? 노키즈존이 공공연한 사회에서 고령의 성인을 돌보는 로봇이 아이로 설정되었다니 기이하다. 무엇보다 이 설정은 우리 사회 돌봄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2021년 기준 9만4520명의 가족요양보호사 중 84.1%는 딸과 아내, 며느리로 불리는 여성들이다. 로봇이 원래 그 일을 하던 인간의 모습을 닮는다면 돌봄 로봇은 여성의 몸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영화 <간호중>에 등장하는 2048년의 간병 로봇 ‘간호중’ 역시 늙고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딸 연정인(이유영)을 그대로 본뜬 모습이다.영화에서 업체 대표가 한 말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쓰러진 노인을 살려내기보다는 그가 눈감는 순간까지 곁에 있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효돌이를 만들었다고. 그저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배구공 윌슨이 떠올랐다. 윌슨과 효돌이, 그리고 간호중의 서로 다른 모습은 이들이 수행하는 돌봄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돌봄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 로봇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저를 꼬옥 안아주세요>의 성공적인 개봉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