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오신날 등이 모여 있는 5월은 지출이 늘어나는 달이지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좋은 달이다. 어버이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본인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고 나 역시 나의 어머니여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나의 사회적 자아는 <브로커>의 “태어나줘서 고마워”처럼 진지한 대사에 저항하려 하지만 현실에선 영화보다 더 낯간지러운 상황을 끌어안기도 한다. 5월은 감사의 달이니 오늘은 낯간지럽더라도 감사의 에디토리얼을 써볼까 한다.
마침 1406호 표지를 장식한 배우 김우빈은 감사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15년째 감사 일기를 쓰고 있다는 김우빈은 “자기 전에 다섯 가지 감사를 쓰는데 15년 하다 보면 쓰는 데도 얼마 안 걸린다”며,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서, 즐겁게 스트레칭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날 쓴 일기를 소개했다. 오늘 나의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은… 첫 번째, 기자들이 마감을 빨리 해줘서 놀랍고 감사하다. 드디어 잔소리가 효력을 발휘한 걸까. 매주 이번주만 같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두 번째,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러 갈 생각에 들뜨고 감사하다. 8월2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개막 전부터 13만장의 표가 팔렸을 만큼 이번 전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상당히 뜨거운데, 아직 이 전시를 보지 않았기에 기대를 품을 수 있어 감사하다. 친구에게 함께 전시 보러 가자 얘기했더니 본인은 이미 보았다며 거절했지만 타인에 방해받지 않고 나의 그림자와 고요히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속 인물을 응시할 수 있을 테니 감사하다. “호퍼의 그림은 통상 소외와 고독의 정서를 담아낸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공간이 아닌 인물로 초점을 바꾸면 그 인물은 자신이 내던져진 공간 안에서 암중모색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독과 고뇌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가 영화에 미친 영향을 다룬 이번주 기획 기사에서 박선 영화학자는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이야기하며 표정 없는 얼굴들의 이면을 읽어냈다. 이 글을 읽고 전시를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세 번째, 처리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서 감사하다. 고독과 공허가 방문할 새도 없이 분주히 움직여야 하니 얼마나 좋은가. 네 번째, 지난 1년간 <씨네21>에서 부지런히 뛰어준 김수영 기자에게 감사하다. 늘 밝은 얼굴로 열심히 취재하고 글을 써준 김수영 기자가 퇴사한다. 앞으로의 나날을 응원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다는 섭리에 감사하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우리는 영원히 끝과 시작의 굴레 안에서 웃고 울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