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종이는 좋은 미술 도구다. 예쁘고 가볍고 흔하다. 접어서 토끼나 비행기 같은 걸 뚝딱 만들 수 있다. 잘못 접어도 별로 표나지 않는다. 다만 고쳐 접을 때는 손톱에 힘을 주어 싹싹 문질러야 한다. 무엇보다 색종이는 가위질하기가 쉽다. 조금 무딘 가위로도 기분 좋게 잘라진다. 마분지나 켄트지보다 풀칠도 잘된다. 사실 너무 잘된다. 오려 붙이기를 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계획과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작은 조각이 손끝의 통제를 벗어나 엉뚱한 자리에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점만 주의하면 색종이는 정말 좋다. 특히 어디에 좋은가 하면, 어린이와 대화를 나누기에 좋다.
나는 독서교실에 온 지 얼마 안된 니은이 마음을 얻으려고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니은이는 일찌감치 ‘스스로’ 독서교실에 온 오빠와 달리 책에 ‘전혀’라고 할 만큼 관심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와 인사하기도 싫어했다. 새로운 관계에 마음을 여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라는 어머니의 귀띔대로였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자 니은이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이번에는 말이 너무 빨라서 따라잡기 어려웠다. 몇주가 지나도록 나는 니은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제목과 본문의 서체가 독특한 그림책 몇권을 모아서 읽었다. 날렵한 글자, 딱딱한 글자, 그림과 함께 그려진 글자, 통통한 글자들을 나란히 놓고 색종이를 오려서 비슷하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당연히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는 즐거운 활동이다. 게다가 가위질을 하면서는 떠들기 어렵다. 나는 니은이에게 ‘가위가 종이를 가르는 소리’를 듣자고 했다. “어린이용 왼손 가위”가 아닌 평범한 가위를 가지고도 니은이는 멋진 글자와 그림을 오려냈다. 색종이가 “사가사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종이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급식, 체육 시간이 싫은 이유, 고양이, 동생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나는 뻔한 레퍼토리로 어릴 때 언니한테 제대로 대꾸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까불이 니은이가 문득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마음으로 싸운 거네요. 마음이 힘들었겠다.” 니은이는 색종이에서 오려낸 ‘모자’의 ‘모’를 모자 모양으로 꾸미는 중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니은이가 돌아간 뒤 책상을 치웠다. 니은이의 손톱만큼 조그마한 색종이 조각들이 니은이의 말소리처럼 팔랑거리며 가볍게 흩어졌다. 어떤 것은 내 손끝에 달라붙었다. 나는 ‘마음으로 싸운다’는 말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깐 앉아야 했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싸우는 마음이 있다. 왠지 누군가에게 싹싹 빌고 싶어졌다. 쌍둥이 오빠와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아기일 때 많이 아팠다는데, 조금이라도 낯선 사람 앞에서는 웃지 않는다는데, 니은이도 지금 마음으로 싸우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니은이 마음도 힘들겠구나. 나는 니은이가 놓고 간 말이 한숨에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