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주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당신의 무기를 선택하라: 우울한 인공지능 학자들을 위한 생존 전략.’ (Choose Your Weapon: Survival Strategies for Depressed AI Academics) 각각 뉴욕대학교 컴퓨터 과학 및 공학과 그리고 몰타대학교 디지털 게임 연구소의 교수로 있는 두 인공지능 연구자가 쓴 글이다. “당신은 학술 기관의 인공지능 연구자인가요? 현재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나요? 인공지능 연구 혁신에 필요한 컴퓨팅 및 인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전혀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논문의 초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논문을 읽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우울했구나! 지난 글에서 썼듯이, 나는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수많은 젊은 여성의 이미지가 불쾌했다. 그 불쾌함의 심연에 여성 대상화의 유구한 역사가 있기에 더욱 절망스러웠다.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로 학습을 시킨 ‘똑똑한’ 인공지능조차 성별 고정관념을 갖는다는 사실 역시 우울함을 더했다. 챗지피티에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자 남자아이는 대형 테크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고 여자아이는 잘나가는 광고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짧은 글이 나왔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다. 케이트 크로퍼드가 쓴 이 잘 보여주듯이, 인공지능 시스템은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와 광물, 노동력, 데이터 등을 먹어 치운다. 챗지피티 역시 데이터 가공과 인간 강화 학습을 위해 대규모 플랫폼 노동이 동원되었으며 대화 단 한번에 소요되는 물이 500ml에 이를 정도로 자원 소모가 극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대형언어모델이 아니라 대형노동모델이나 대형자원모델로 불러야 하지 않나 싶다. 그에 비해서 챗지피티가 하는 일은?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20~50대 남녀의 챗지피티 사용 목적 1, 2위는 “재미 와 호기심 충족” 그리고 “취미, 관심사, 여가 등과 관련된 정보 탐색”이다. 나 역시 처음 챗지피티가 나왔을 때 이제 연구가 편해지겠구나 싶어 설렜다가 금세 실망했던 경험이 있다. 엉터리 논문을 추천하는 기계에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는 없었다.
다시 처음의 논문으로 돌아가자. 논문에서 말하는 ‘우울한 인공지능 학자들’은 거대 테크 기업 이 주도하는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 경쟁 속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기술적, 인적, 금전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 생존을 걱정하게 된 대학이나 연구 기관 소속의 연구자들이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이들도 우울하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술을 만드는 이들과 연결되면 기술을 바꿀 수 있으니까. 내친김에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우울한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우울한 인공지능 언저리의 연구자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더 많은 우울한 이들, 이들이 함께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 않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