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가 기다리던 제비처럼, 때가 오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3월의 새 담임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조우는 신학기의 설렘과 함께 찾아왔다. 새해의 길목 시내 상점가의 점집은 신년 희망의 예고를 기대하며 포렴을 걷고 들어서는 사람들로 분주하곤 했다.
내게도 늘어난 인연만큼 정해진 리추얼들이 쌓여간다. 요즘은 4년째 정월엔 매주 홍천에 간다. 새해를 시작하며 각오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기업이 연초마다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청해주신다. 과정의 수강생은 달라도 운영하는 사람들은 같다. 매년 만나기에 낯선 익숙함이 적당한 거리로 다가온다. 고즈넉한 산골의 눈 덮인 연수원은 방학의 빈 교실처럼 애틋하다. 차분한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이야기 속, 각자는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고 삶을 정비한다.
올해는 강연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늘 가고 오던 바쁨을 잠시 멈추고 쉼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탐색해 찾아간 막국숫집의 모습은 기대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섬세하게 정돈된 메뉴와 본연의 맛을 지키려 절제된 향과 맛으로 명성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식사 후 양식당처럼 트롤리에 담아온 메밀차는 파인 다이닝의 후식보다 훌륭했다. 젊은 사장님은 손수 차를 내리며 메밀 수확철이 아닌 때는 동리가 아닌 제주도의 메밀을 쓴단다. 그 이유가 낱알의 균질함과 색상 그리고 향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진지함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낱알 하나까지 선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성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주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한적한 고장의 눈 오는 비수기, 지난주 찾은 다른 동리의 식당들은 동면처럼 일을 쉬었다. 일을 사랑하는 이는 혹여 손님이 오지 않을 때라도 누군가 찾은 이가 실망할까 걱정하며 낱알을 고르고 반죽을 한다. 신용이라는 단어보다 소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그 거룩한 마음에 감사한다. 계산하며 근처 카페 중 어느 곳을 추천하겠냐고 물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인정하는 곳을 믿기 때문이다.
그가 추천한 곳은 얼마 전 새로 연 카페였다. 다른 도시에서 이미 성공한, 커피에 진심인 주인이 1년 넘게 새로운 지점에서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단다. 과연 그대로였다. 멋들어진 글씨체로 호기 있게 고장의 이름을 입구에 새긴 카페는 따사로운 겨울 햇살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드립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비정형의 컵에 담아 마시는 동안, 정리와 시작 그 가운데 어느 순간으로도 남을 깊은 감각을 선물받았다.
아름다운 고장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을 알아본다. 그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응원하며 나도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얻어가고 싶다.
산수화처럼 정갈한 눈 속의 세상에서 내가 느낀 진리는 지난해 이맘때 이 칼럼의 마지막 문장과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