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캐릭터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어느 정도는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현실의 인물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쇼를 한국에서는 예능이라고 부른다. 물론 인물만 실제로 나오지, 실제 자신과 같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도 소위 ‘캐릭터’가 형성되지 않으면 인기가 없다. 방송의 성공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상관관계, ‘케미’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능을 지향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성공도 일정 정도는 캐릭터 플레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봉주나 김어준이나, 방송의 모습과 개인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 플레이로는 박근혜와 최순실 조합이 환상 아니 ‘환장’의 조합이 되었다. 오방색까지 배경으로 끼어들며, 추운 겨울날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광화문으로 나오게 하였다. 가슴이 뛰는 감동과는 정반대의 가슴 터지는 속터짐이 발생했다.
결혼하고 9년 만에 큰아이가 태어나면서 뒤늦게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만화영화도 같이 보게 되었다. 재즈풍으로 각색된 디즈니의 <헤라클레스>도 정말 뒤늦게 보았다. 신화라서 팩트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어린아이가 독사와 싸우고, 잃어버린 자신의 것을 찾는 얘기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라클레스만 그런 게 아니다. 가이아와 제우스 등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얘기 자체가 요즘 말로 ‘한 뻑’이 있다.
큰아이가 글자를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 본 만화책 중 하나가 <오성과 한음>이다. 초등학생 때 나도 이걸 무척 재밌게 봐서 아이가 또 보는 것이 신기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에서 우정에 관한 얘기는 딱히 내세울 게 없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친하기는 했겠지만, 어쩐지 권력과 거래의 얘기들 같아서 ‘다크’하다. 성삼문과 박팽년도 친했다고는 하는데, 사육신 얘기를 어린 자녀에게 가르치기는 좀 그렇다. 우정으로 치면 전두환과 노태우를 따를 사람은 우리 역사에서 없는 것 같다. 같이 학교를 다녔고, 파병도 같이 갔다. 친구가 위기에 빠지자 전방의 군대를 빼서 친구를 구했고, 기다렸다가 대통령도 차례대로 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만화로 ‘두환과 태우’, 그런 걸 읽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승정원일기>는 고종이 한음의 후손인 이병교에게 오성과 한음 얘기가 진짜냐고 물어본다고 기록한다. 물론 아니다. 두 사람이 친한 것은 맞지만, 이덕형이 18살, 이항복이 23살 되었을 때 처음 만났다. 민간 설화 중 재밌는 것을 다 넣은 얘기니까, 이 얘기가 얼마나 재밌겠는가.
캐릭터와 구조, 상징, 시퀀스 이런 것만 따지다가 정말 재밌는 얘기는, 얘기 그 자체가 재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신화가 되고,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 아니겠는가? 미학이고 구조고, 일단 재미부터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이 50 넘어서 처음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를 훨씬 더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