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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시켜야겠어요, 내 안의 광기를, <어둠 속의 댄서> 비욕 Bjork
박은영 2001-03-13

“나는 바닷가에 살아요. 밤이 오면 그 속으로, 파도도 잠잠한 깊은 그곳으로 뛰어들어 닻을 내리죠. 내가 머물 곳은 바로 여기. 이곳이 내 집이죠.”( 중에서 ‘The Anchor Song’)

사이렌이 있다면, 비욕의 모습과 목소리를 지녔을 것이다. 은회색 하늘과 바다와 대지의 딸. 뱃사람의 넋을 빼앗는 영묘한 자태와 음성의 사이렌. 비욕의 매력은 이처럼 비현실적이다. 동서양이 교차하는 얼굴에 요정처럼 작은 체구, 예민하면서 격렬하고 청아하면서 새된 목소리, 낯설고 신비로운 섬 아이슬란드에서 나고 자란 배경, 생후 일곱달부터 노래하고 열한살에 데뷔한 경이로운 이력까지, 비욕이 ‘미스 디퍼런트’로 불리는 이유를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비욕이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된 것은, 그녀가 치른 혹독한 유명세 때문이기도 하다. 비욕이 만삭의 배를 드러낸 채 노래하는 모습을 본 연로한 시청자가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그녀가 동료 뮤지션 트리키와 사귄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광팬이 수제 폭탄을 배달한 뒤 자살한 사건은, 언제나 그녀를 따라붙는다. 물론 이런 수상한 열기의 진원지는 어디까지나 비욕의 음악적 재능이다. 예닐곱개의 밴드와 프로젝트 밴드를 거쳐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비욕은 록과 펑크와 테크노와 재즈와 전통민요를 아우르며,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일궈왔다. 싱어송 라이터라는 대목이 그 재능의 정점을 장식하고 있지만, 의외의 하이라이트는 전혀 다른 분야인 영화에서 터져나왔다.

““나는 모두 봤어요. 어둠도 봤고 빛도 봤죠.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원한 것은 모두 봤어요. 내 과거도 봤고 미래도 알지요. 이미 다 보았는 걸요. 더 볼 게 뭐가 남아 있나요.” ( 중에서 ‘I’ve Seen It All’)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 스파이크 존스가 96년에 연출한 비욕의 의 뮤직비디오가 발단이었다. 전통적인 뮤지컬의 형식을 빌린 이 뮤직비디오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춤추고 노래하는 비욕의 모습을 본 라스 폰 트리에는 “저 여자야말로 영화배우가 돼야 한다”고 반색했다. 비욕은 달랐다. 이전까지 라스 폰 트리에의 존재조차 몰랐고 연기의 매력은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어둠 속의 댄서>에 빠져보기로 한 것은, <브레이킹 더 웨이브>로 자신의 감정을 휘저은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믿음, “현실보다 음악에서 안식을 찾는 셀마와 그녀의 노래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비욕은 뮤지컬을 사랑하는 가난하고 눈먼 여공으로, 배신한 이웃을 살해하고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인 셀마를, 아이의 천진함과 백치의 순수함, 음악적 재능과 열정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 결과, 칸영화제는 연기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초보 배우 비욕에게 여우주연상을 헌사했다. 하지만 비욕에게 영화는 음악에 대한 외곬의 사랑을 재차 확인한 경험,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폭파시켜야겠어요. 이 몸을 폭파시켜 내게서 떨어뜨려야겠어요. 난 완전히 새로워지죠. 내일이면 완전히. 조금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새로워질 거예요.”( 중에서 ‘Pluto’)

비욕은 <어둠 속의 댄서>의 O.S.T를 ‘셀마송’이라고 이름지었다. 자신의 삶이 그 자체로 한편의 뮤지컬이길 바랐던 셀마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 셀마와 완전히 이별하고 비욕 그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비욕은 셀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이상을 바쳤다. 친구들이 정신 건강을 위해 도중하차할 것을 권고할 만큼 몰입했고, 셀마의 운명을 암흑으로 몰고 간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카트린 드뇌브는 “비욕은 연기할 줄 모른다. 오직 그 인물이 될 수 있을 뿐”이라며, 그녀의 특별한 직관을 칭찬했다. 비욕은 셀마에게 육신과 영혼을 모두 내준 탓에 죽음 같은 고통, 자학적인 여행을 겪었다. 그 어떤 작품으로도 그 어떤 캐릭터로도, 비욕은 셀마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로 최상급의 찬사를 들은 비욕은, 이제 떠나야 때를 알고 떠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런 그녀를 배웅하는 우리는, 그리하여 영화배우 비욕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진심이기도 아니기도 한 묘한 심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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