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를 ‘나이스 가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멀게는 <스플래시>, 가깝게는 <포레스트 검프>부터 <그린 마일>까지 순수하고 선량하면서도 강직한 캐릭터를 그가 도맡아왔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남성 스타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 밑바닥에 자리한 두려움과 유약함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가 연기한 <필라델피아>의 베케트,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 <아폴로13>의 로벨,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밀러 대위 등은 모두 외부적 환경이나 적과 맞서기 위해 이보다 훨씬 어려운 스스로와의 투쟁을 겪어야 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그의 ‘나이스 가이’ 이미지는 지적이진 않지만 사려깊어 보이는 인상과, 근육질은 아니지만 자신의 믿음을 관철시키는 행동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작 <캐스트 어웨이>는 이같은 그의 페르소나가 가장 잘 드러난 영화인지도 모른다. 그가 연기한 주인공 척 놀랜드는 페덱스의 해결사로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 태어난 듯 열정적으로 일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에 조난된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이곳에서 그는 무한한 시간과 절대적 고독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적을 만나게 된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는 조직할 시간이나 상대할 사람이 없는 이곳이 얼마나 두려움과 외로움을 주는가를,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스스로와 맞부닥치는 한 인간의 실존적 투쟁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연기 상대라곤 나무와 바람뿐이었다. 마치 무성영화를 만드는 것 같았다”고 설명하는 그는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와 결단을 맨몸뚱이로 소화했다.
사실 <캐스트 어웨이> 속 톰 행크스의 모습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7년 전 그 스스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 당시 그가 20세기 폭스사에 <정글의 척>이라는 제목으로 제안했을 때 이 영화는 지금보다 훨씬 철학적이며 실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섬에 고립된 인물은 그의 또다른 자아였던 같다”는 폭스 부사장 엘리자베스 게이블러의 이야기처럼, 이 영화는 당시 그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슈퍼스타로 부상하며 유명세 때문에 바깥 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그의 고립감이 묻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탓인지 영화에 임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 속 척 놀랜드의 분투처럼, ‘톰 행크스를 상대로 한 톰 행크스의 싸움’에 다름 아니었다. 피지섬에서 조난 초기 상황을 촬영할 때 225파운드였던 그의 몸무게는 8개월 뒤 다시 본격적인 무인도 로케이션에 들어가면서 170파운드로 줄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코코넛과 해물만으로 식사를 하며 다이어트를 했던 것. 또 작업에 몰두한 나머지 촬영 도중 입은 오른쪽 다리의 상처를 방치했다가 세균이 몸 속으로 퍼져 생명을 잃을 뻔도 했다. 이 작품의 촬영이 끝난 직후 행크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소문도 들리니 그가 얼마나 이 작업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골든글로브상에 이어 그가 최초로 세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뒤는 남자 주연배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렇게 커다란 작품을 끝내놓은 상황에서도 그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여전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 그는 올 봄 미국에서 를 통해 방영될 예정인 1억2천만달러짜리 10부작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러더스>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동시에, 이 미니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를 직접 감독하고 있다. 또 곧바로 샘 멘데스의 새 영화 <지옥으로 가는 길>에 동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