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이 남자를 보자. 떡 벌어진 어깨, 숱검댕 눈썹, 자상한 미소, 게다가 멋지게 쪼개진 턱이라니…. <인어공주>의 다정한 왕자님인가? 아님 <미녀와 야수>의 터프한 왕자님? 그도 아니면 혹시…, 타잔인가? 그의 이름은 크롱크, <쿠스코? 쿠스코!>에서 마녀 이즈마의 충실한 심복으로 출연중이다. 이처럼 완벽한 외형조건을 가진 그가 입을 여는 순간…, 엥? 여자들이 다 쓰러진다고? 에이, 농담은. 사실 그는 ‘니가 뭘 하든 하지마’란 말이 튀어나올 만큼 말 한 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사고와 직결되는 사고뭉치인데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판단할 때까지 너무도 긴 시간이 요구되는 ‘느림보 뒷북맨’이다. 황제 쿠스코를 독살할 계획이 꼬여 그를 라마로 만들어놓고도 크롱크에겐 오로지 한 가지 걱정뿐. “이즈마님, 저녁 디저트는 어떻게 하죠?”
정교한 신기술의 영상미보다 4명의 독특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캐릭터 코미디에 공을 들인 <쿠스코? 쿠스코!>는 원래 <태양의 제국>이라는 장엄한 서사극으로 준비되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4년간의 대대적인 수정 과정 중에 이야기는 좌충우돌 코미디로 바뀌었고 기존 등장인물의 캐릭터 변화와 함께 새로운 캐릭터도 추가됐다. 이때, 별다른 가족계획 없이 낳았지만 알고보니 복덩이였더라, 하는 캐릭터가 바로 크롱크다. “크롱크의 동작은 스타카토처럼 단음적인 방식으로 마치 로봇이 움직이듯이 뻣뻣하게 움직인다. 또한 그의 목은 매우 두껍고 둔탁하며 얼굴은 쐐기꼴이고 코는 길쭉하다. 우리는 그의 얼굴과 목 주위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켜서 그렸으며, 그 결과 그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수석 애니메이터 토니 밴크로포트가 창조한 애니메이팅 동작과 딱 떨어지는 크롱크의 느릿한 듯 명랑한 목소리는 TV시리즈 로 익숙해진 배우 패트릭 와버튼의 것이다. 물론 아이들용으로 더빙된 버전을 본다면 <노틀담의 꼽추>에서도 출연한 적 있는 성우 홍성헌씨의 낯익은 목소리로 감상하겠지만, 자막으로 볼 때 들을 수 있는 크롱크의 원음 목소리는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다. 작가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사람들이 크롱크의 캐릭터에 관해 설명했을 때, 난 즉각 겉으론 말짱해 보이지만 항상 일을 엉뚱하게 망쳐놓는 의 퍼디를 떠올렸다”고 말할 정도로 패트릭 와버튼과 크롱크는 닮은꼴이고 패트릭은 실제 애니메이팅 작업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다람다람다람, 도롬도롬 도로롬’ 같은 다람쥐언어로 다람쥐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시금치 파이를 만들 줄 아는 가정적인 남자. 크롱크는 쿠스코를 처치하기 위해 농부 파차의 집을 찾아가서도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아이들과의 줄넘기놀이에 더 열중하는 결코 미워할 수 없이 사랑스런 캐릭터다. 물론 그의 소속은 분명 마녀 이즈마의 시종, ‘나쁜 나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나라’편에 끊임없이 자살골을 선사하는 실수나, 고민에 빠질 때마다 어깨 위에 나타나는 천사와 악마의 피터지는 격돌은 크롱크의 무소속(?)성을 더없이 잘 나타내 준다. 악마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천사, 크롱크의 등장은 그간 선악이 분명히 구분된 캐릭터들만을 선보이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전형으로 기억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