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만큼 미칠 수 있다. 이희주 작가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순정한 추구와 그로 인해 생긴 맹목, 닿을 듯 닿지 않는 애정의 대상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서사와 풍경이 있다. 특히나 그 자신이 오랫동안 애정해온 k팝을 키워드로 하는 사건과 인물을 다룰 때 그 힘은 강렬해진다. 장편소설 <성소년>이 영국과 미국에 억대 계약금으로 출간 계약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나온 이희주의 첫 책은 단편집 <크리미(널) 러브>다.
- 데뷔한 지 10년 만의 첫 소설집이다.
대학 때 시를 쓰다가 처음 쓴 소설 <환상통>(2016)으로 데뷔한 이후 장편 작업만 했다. 단편을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돼 실질적으론 근 3년간 발표한 작품을 묶은 거다.
- 소설집 제목을 편집자가 지었다고 들었다. 장단편을 불문하고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단어의 조합이다.
편집자님이 “<크리미(널) 러브> 어떠세요?”라고 말했을 때 ‘이거 말고 다른 거는 없겠는데’ 싶었다.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사랑의 다면성을 다루는 작품들이 묶인 만큼 제목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읽히길 원했다.
- 동시대성이 강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작품을 쓴다. 상호성의 형태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랑에 대해서.
말하자면 종교적인 사랑이다. 흔히 사랑에 대해 말할 때 ‘벼락같이 찾아 왔다’, ‘교통사고 같았다’라는 비유를 쓰며 ‘당했다’고 수사하길 좋아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내가 찾아놓고 내게 찾아왔다고 나 자신을 속이는 거다. 이게 흔히 내 소설 속 사랑을 표현하는 ‘일방향성’의 특징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땐 삶을 매 순간 직면하며 살아내는 사람이 있고, 삶을 못 견뎌 어떻게든 의미와 이야기를 만들려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다. 내 신화는 사랑이고. 나는 기본적인 자기 돌봄이 안되는 타입이다. 제때 먹고, 씻는 일도 버겁고. 얼마 전엔 마스카라를 못 사서 밤새 자책했다. 그럼에도 삶이 지긋지긋함을 견디면서도 살 만큼 의미 있다고 보기에 사랑하는 존재를 크고 중요하게 만든다. 농반진반으로 “나 못 죽는다. 다음 앨범 나오는 거 봐야지”라고 외치는 거다. (웃음) 그런 식으로 삶에 남이 만든 이야기도 바르고, 내가 만든 이야기도 바르며 살고 있다.
- 내가 만든 세계 만들기와 남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나.
계속 충돌하지. 계속 싸우고 있고.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 아닌가? 글로 한정해 말하면 독재자가 되어 쓴다. 내가 만든 인물들조차 무섭기 때문에 폭력으로 누른다. 그래서 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이게 한다는 작가님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인간을 사랑하는 거 같다. 자기가 만든 인간조차. 나는 대체로 통제력을 유지하고 딱 한 문장에서만 나를 놓는다. 그리고 그 한 문장 때문에 내 글에 의미가 생긴다고 보고. 그렇기에 남이 만든 세계에 휘둘릴 기회를 항상 노리고 있다. 아까 말한 ‘교통사고’ 같은 표현을 쓰는 것과 똑같다. 누구보다 패배하길 기다리고 있다.
- 가학과 피학을 왔다 갔다 하는 셈이다. 어떤 극단에 있어야 하는 사랑의 작동 방식이 소설에서 언제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내가 쓰거나 사는 방식이 그랬다. 핀볼 같다고 할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이쪽 벽에 부딪히고 반대편에 부딪히며 달렸는데 이게 참 아픈 짓이다. 예전엔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젠 아프지 않은 방식도 있다는 걸 알았다. 선택의 영역이 된 거지. 그래서 아플 것인가, 더 아플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중이다. 동시에 내가 존경하는 건 가학이나 피학 따위가 붙지 않는 그냥 삶이기도 하다. 요컨대 <패터슨>에서 보여주는 삶. 삶 그 자체를 사는 사람들은 겸허해진다. 난리도 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니까. 최근에 <골든 카무이>를 보며 다시 느꼈거든. 먹고사는 게 근본이라고. 그런 동시에 이야기에 자기 삶을 투신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무릎 꿇는 일도 여전히 멈추지 못하고 있다. 너무 줏대 없는 답변 같네. (웃음)
- <크리미(널) 러브>를 비롯한 이희주 작가의 작품이 갖는 특징은 그래서 생겨난다. 이 사랑의 주도권은 완전히 나에게 있지만 이 사랑이 어떻게 끝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이 없는 느낌이 드는. 그 혼란이 이야기를 강하게 만든다.
나에게만 있으니까 더 모르겠는 거다. 타인이 있어야 계속해서 합의하고, 수정하고, 변화하며 찔끔찔끔 이동할 수 있는데 오로지 나뿐이니 막막하지. 그래서 자꾸 칼을 들게 되고. 나도 남도 죽이게 되고. 내 인물들은 어떤 의미로는 완결된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내가 자주 쓰는 등장인물 중 유리와 우미 캐릭터가 있다. 대개 유리는 미소년, 우미는 그를 짝사랑하는 여자로 등장하는데 우미가 유리와 사랑하게 된다고 행복해질까? 난 아니라고 본다. 내 인물들은 모두 결핍까지 포함해서 완전하다. 구멍 없는 도넛은 도넛이 아니듯, 영원히 사랑받지 못하기에 우미는 완전한 존재가 된다. 옛날 카툰에 나오는 자기 코 앞에 당근을 매달고 좇는 당나귀 같은 영구적인 자동-사랑 기계가 만들어지는 거다.
- 소설들마다 주인공과 타인들의 관계는, ‘닿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아?’ 같은 미묘한 감각이 있다.
그 관계가 공들인 모래성이기 때문이다. 닿는 순간 바로 무너진다. 진짜 가능 세계라는 건 부수어야 만들 수 있는데, 그래야 미래를 가지게 되는데, 다들 바싹 얼어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비전이 간절하니까 환상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게 되는 거고. 버추얼 휴먼이나 아이돌 같은. 개인적으론 계속계속 무너지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목표다. 남들은 다 아는 것 같아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웃음) 사랑의 어떤 부분에서 나는 정말 늦깎이다.
- 단편 <최애의 아이>는 닿지 않고 끝까지 가까워지는 시도에 대한 이야기다. 독한 맛 K팝 소설인 이 작품은 닿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궁극의 애정 증명 같은 행위로서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아이디어를 풀어낸다. 가장 위험한 자리에 있는 순정을 그려낸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에도 사랑은 여전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이뤄 그에 대한 실험을 한다. 나는 그걸 소설로 한 거고. 아이돌을 현실 사람만큼 좋아한 기간이 길었기에 우미를 움직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와 닮은 인물이기도 하고. 나는 내가 쓴 인물들이 나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전부 나다.
- 하지만 나는 소설 속 인물과 달리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치는 거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웃음) 소설은 나름 계산해서 쓰고 있다.
- <최애의 아이>에는 “아우, 미친년들이지”라는 말이 나온다. 남들은 ‘미친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미친년’이 아니었다는 전개일 때가 많은데...
여기서는 미친년 맞지. 근데 ‘어쩌라고’ 인 거다. 그래서 뭐, 죽어줄 순 없잖은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일본 호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 군상이기도 한데, 존재 자체가 세계의 미스터리이기도 한 인물을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살면서 폭풍 같은 인물들을 만났던 경험이 있다. 그건 나 자신이기도, 또 남이기도 하지만 누가 되었든 내게 상처를 남겼는데 소설 속에서 그들과 손잡고 이야기의 마침표까지 가보면 이상하게도 힘이 생긴다. 겁을 덜 먹게 된달까.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정말 세상이 무서워서 하는 일이다. 쓰는 순간엔 매번 몸부림치고 있다.
- 단편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는 계엄과 광장, 팬덤이라는 단어들이 혼재된 겨울을 보낸 입장에서 마음이 가는 작품이다. 응원 봉을 들고 광장에 나온 젊은 여성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혼란을 혼란으로 두고 싶어 쓴 작품이다. 광장의 젊은 여성이자 k팝 팬 당사자로서 주류 해석으로부터 미끄러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런 동시에 내 작품치고는 예외적으로 선명하게 쓴 부분도 있다. 인물들이 움직이는 근원이 된 계엄이라는 사건은 드물게 선악이라는 개념을 명징하게 다뤘다. 당시 k팝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프로젝트팀을 꾸려 계엄 광장에 나온 아이돌 팬들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그걸 묶은 책이 12월3일에 나올 예정이다. 제목은 <케이팝 응원봉 걸스>다.
- 어떤 때 입덕하고 탈덕하나.
탈덕은 확실하다. 노래가 두번 이상 ‘후지게’ 나오면 아… 마음이 식지. 최애는 친구와 애인과 자식과 삶의 기쁨과 그 밖의 모든 것이 되어주지만 역시 시작은 춤과 노래다. 기본에 충실한 게 내겐 사랑의 증명이다. 그래서 탈덕한 팀의 노래는 안 듣지만 완덕한 팀의 노래는 듣는다. 탈덕은 그런데… 입덕의 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라고 말하며 현 최애를 좋아하게 된 영상의 분초를 정확히 언급했다.)
소설가 이희주의 영화 pick
“일관성 있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라고 운을 떼고 가장 여러 번 본 영화로 언급한 작품은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다. 초반부 대사를 달달 외울 정도로 좋아한다. 애니메이션 무빙이 “너무 너무 끝내주고” 강아지들이 귀여워서 좋아한다. 또한 더 많은 주목을 받았어야 했다고 믿는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은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다. 한국에 4명만이 가지고 있는 굿즈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스즈키 세이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