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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월터의 눈높이로, <킹 오브 킹스>가 종교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
이자연 2025-07-08

런던의 한 극장. 관객 앞에서 낭독회를 연 찰스 디킨스는 마치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열연에 몰입한다. 중요한 날 무대 뒤편에서 자꾸만 장난을 치는 막내아들 월터를 크게 혼낸 뒤 미안해진 그는 아직 세상에 발표하지 않은 소설을 들려준다. 외로운 스크루지의 참회, 소설가의 낭독, 아들을 위한 구연동화까지 <킹 오브 킹스>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 찰스 디킨스를 앞세워 ‘이야기’라는 매개의 힘을 유연하게 활용한다. 예수의 생애를 다루는 순간 영화는 필연적으로 종교적 진입장벽을 갖게 되지만, 극중극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직접적이기보단 간접적인 접촉, 강요하며 말하기보다 너그럽게 말하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종교극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반감을 가진 사람도 조금씩 흘러드는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는 이유다.

예수는 끊임없이 경계와 의심의 눈총을 받는다. 출생의 순간에도 사람들의 외면 끝에 마구간 한편을 겨우 빌려 태어나고, 그의 탄생을 시기한 헤롯은 천지의 모든 갓난아이를 없애려 한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난 뒤에는 광야에서 40일간 사탄의 시험을 받고, 병자와 약자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땐 곳곳에서 이를 의심하는 눈길이 쏟아진다. 게다가 그를 따르는 열두 제자 중에서도 배신자가 나온다. 몸소 인류의 죄를 사하고 부활에 이르는 순간까지 예수의 일대기를 정리한 <킹 오브 킹스>는 성경에 기록된 기적, 이변, 불가사의를 자랑하기보다 그가 직면해야만 했던 시련, 불신, 음모를 주요하게 보여준다. 위대함보다 고난길에 무게를 실으면서 영화는 예수를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묘사할 기회를 얻는다.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지만 슬픔을 느끼는 예수, 인면수심의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화내는 예수, 견디는 일이 힘들다고 고백하는 예수. 그간 미디어에서 그려져온 종교적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예수의 모습은 통달에 이른 완료형이 아닌,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처럼 다가온다. 이로써 생애주기에 따라 끊임없는 자기 증명을 요구받는 현대인들은 불신과 의심에서 출발한 예수의 고난이 자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 말해 일체감. <킹 오브 킹스>는 예수와 일반 관객 사이에 놓인 거리를 성자에 대한 입체적 해석, 시대적 공감을 발판 삼아 가깝게 좁혀나간다.

특히 꼬마 월터의 눈높이로 평준화된 이야기는 성경이 품은 인류 보편적 정서와 욕망, 도덕과 지혜를 쉽게 설명한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되어온 신학적 모티프를 명료하게 이해할 창구가 되는 것이다. <킹 오브 킹스>의 흐름은 종교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가닿을 수 있는 너른 보편성을 서사와 구조로 재탄생시켰다. 별을 좇아 어린 왕의 탄생을 알린 동방박사처럼 새로운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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