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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 김우형 촬영감독 인터뷰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5-07-08

장성호, 김우형(왼쪽부터).

-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 긴 일대기를 임팩트 있게 정리했다. <킹 오브 킹스>의 초반 기획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장성호 맨 처음에 나는 제작만 맡고 각본가와 감독은 다른 분에게 맡기려 했다. 하지만 중간에 많은 문제를 겪으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게 나와 김우형 촬영감독이다. (웃음) 그렇게 자연스레 제작을 맡았고 내가 각본·연출을, 김우형 촬영감독이 촬영을 진행했다. <킹 오브 킹스>는 다분히 사업적 전략으로 시작했다. 우리 기술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예산이 필요한데 영유아물에 특화된 국내 시장 규모로는 이를 현실화하기 어려웠다. 10년 전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예산이 대부분 50억~60억원에 그쳤고 그 안에서 중국에 외주를 보내거나 해외 세일즈로 BP 포인트를 넘기는 게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그래서 할리우드 진출을 떠올렸다. 메인 시장으로 바로 가자, 그게 내 전략이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도 없던 시절에 K콘텐츠의 위력을 바로 납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할리우드 진출에 맞춘 각본 기획이 무척 중요했겠다.

장성호 이런 상황이라면 오리지널 IP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존경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북미 박스오피스가 900만달러에 달한다.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더빙하고 월트디즈니 컴퍼니에서 배급까지 맡았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스튜디오 지브리마저 고초를 겪었는데 내가 어떻게 오리지널 IP로 승부를 볼 수 있겠나. (웃음) 그래서 이 시장 안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 관객에게 익숙한 소재, 특히 원작 베이스로 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리서치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라는 책을 발견했다. 미국은 청교도가 세운 국가인 만큼 문화 전반에 기독교적 관점이 깔려 있다. 이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분위기가 있어 보편성을 충분히 획득할 만했다.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시장 조사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는 기독교 콘텐츠 실패 사례가 없었다. 적어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그 사실이 내겐 너무나 중요한 정보였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실패는 허용될 수 없다. 내겐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줘야 할 막중한 책임도 있다. 그때부터 수치로 증빙되는 자료를 모아 투자 유치를 위한 절실한 노력을 했다.

- <고지전> <암살> <더 킹> <1987> <하이재킹> 등 역동적인 촬영 기술을 쌓아온 김우형 촬영감독이 <킹 오브 킹스>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첫 애니메이션 작업이다.

김우형 지금까지 실사영화를 찍어왔지만 나 또한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이 선호를 어떻게 업무로 이어갈지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때 우연히 장성호 대표로부터 <킹 오브 킹스>의 초기 기획에 대해 들었고, 함께할 방법만 있다면 함께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특히 이번 작업은 버추얼 환경에서 직접 찍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 마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진짜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처럼 일했다.

장성호 실제로 엑스박스 컨트롤러를 붙여서 외부에서 화면을 보며 촬영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게 실제 카메라는 아니지만 카메라처럼 작동했다. 감독이 원하는 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컨트롤러에 기능을 모두 더했다. 3D 게임과 흡사한 형태다.

김우형 실사영화의 경우 이 시스템을 활용해 프리비즈(촬영 전 구상 이미지를 컴퓨터상에서 구현해보는 과정. 실제 제작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편집자)를 진행한다. 배우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조명이 어디까지 올 것인지 등 현장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촬영 전날 느끼는 압박감이 훨씬 줄어든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이 자리에서 찍는 모든 것이 파이널 버전이라 더 생생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시행착오를 언제나 무제한으로 허용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다. 화장실도 안 가고, 잠도 안 자고, 수십번 재촬영해도 똑같은 에너지로 연기해주는 배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웃음) 무엇보다 A컷의 여성과 B컷의 남성을 섞을 수 있는 효율성도 좋았다. 실사영화라면 살신성인으로 조절해야 하는 것들이 이 안에서는 간단했다.

- 촬영 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김우형 바닷가로 배를 타고 나가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 뒤로 해가 지는 순간. 일몰을 찍는다는 건 촬영감독에게 꿈같은 일이랄까. (웃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무리 계획을 잘해도 구름 때문에 내일로 미루거나 빛의 방향 때문에 다음날로 미루거나 해야 한다. 이렇게 날씨를 제어할 수 있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장성호 베드로가 배신하고 도망가면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건을 쓴다. 그때 이 두건이 화면을 확 덮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예수의 뒷모습이 드러나는 컷이 있다. 콘티 그릴 때부터 무척 뭉클했는데 그 장면이 구현되니 정말 미묘했다. 내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김우형 촬영감독이 한끗을 알고 기가 막히게 포착해냈다. 연출자의 의도를 200% 이해하는 능력 덕이다.

-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막내아들에게 예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이다. 앞서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로부터 출발했다고.

장성호 그 소설이 영화의 완전한 원작이라 하긴 어렵고, 느슨하게 영감을 받았다. 왜냐하면 예수에 대한 해석에서 찰스 디킨스와 나의 관점이 많이 달랐다. 디킨스는 도덕주의적 관점으로 예수를 바라보며 신성이나 구원이 부족한 것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면모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여 원작을 완전히 탈피했다. 내가 집중했던 것은 찰스 디킨스 그 자체다. 그가 영국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글을 못 읽는 대중을 위해 자신의 작품의 낭독회를 열정적으로 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다음 작품이 뭐가 나올지 설레하고 기대한 이유기도 하다. 처음엔 혼자 낭독했지만 이에 대한 열의가 커지면서 무려 배우를 고용해 무대에 올렸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들 앞에서 <우리 주님의 생애>를 낭독했다. 이건 아이들을 위해 쓴 것이니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손자가 그만…. (웃음) 예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했다는 그 설정.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예수의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을 찰스 디킨스에게 투영시켰다. 고양이 윌라도 실제로 디킨스 가족이 키웠던 고양이다.

김우형 종교는 잘 몰라서 각본과 해석은 온전히 장성호 감독에게 맡겼다. (웃음)

장성호 그렇기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중간에 시나리오를 크게 두번 수정했다. 한번은 김우형 감독의 말 때문이었다. “기왕에 캐서린 디킨스가 등장하는데 좀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역할이 너무 작은 거 같아.” 그때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캐서린이 등장해서 더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캐릭터로 발전시켰다.

- 시나리오가 크게 수정된 나머지 한번은.

장성호 함께 기획한 제이미 토마슨이 월트디즈니 컴퍼니 소속 작가들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한 적 있다. 마블, <스타워즈> 시리즈 등 시나리오를 모니터링하는 분들이었기에 이 기회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고 혜택이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지적했다. 꼬마 월터가 제자들이 아닌, 예수하고만 상호작용하도록 해라. 정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며칠 내내 끙끙 앓았더니 김우형 촬영감독이 심플하게 말했다.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과감하게 나아갔다. 월터가 오직 예수와 교감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 예수의 일대기라 하면 놀라운 기적을 목격할 것을 기대하지만 <킹 오브 킹스>는 오히려 그런 지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장성호 예수의 이야기에 기적이 일어난 건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과시하듯, 전시하듯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결과가 기적인 것처럼 접근하고 싶었다. 돼지들을 휘감았던 악령도 사실은 아주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하다. 작은 바람 그 이상의 과한 묘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과장될수록 관객들이 오히려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우형 촬영에도 그러한 관점이 반영됐다. 콘솔 카메라로 하면 모든 앵글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 날아다닐 수 있고, 바다를 가를 수 있고. 하지만 그렇게 판타지스러운 것보다는 우리가 물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동작을 구현하고자 했다. 카메라가 실제 땅을 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인데도 시네마틱한 반응을 느낄 수 있다.

- 올해 4월에 수익 5400만달러를 달성하며 <기생충>을 넘어 한국영화 사상 북미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 기록을 세웠다. 개봉 17일 만이었다.

김우형 잘될 것 같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그 직전까지도 정말 조마조마했다. 워낙 여러 영화가 동시에 개봉했다. 바로 앞에 대박난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나오기도 했고.

장성호 눈에 보이지 않은 많은 숨은 노력들이 있었다. 할리우드영화에서 파주라고 나오는데 동남아 정글처럼 나오고, 한국 식당인데 본 적 없는 서체로 간판이 쓰인 그런 실수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경 시대 비주얼은 모두 고고학 박사에게 확인받고, 모든 대사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각본가인 롭 에드워드에게 대사 윤색을 받았다. LA에서 만나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햄버거, 피자만 배달해 먹으면서 대사를 하나하나 수정했다. 자연스러움과 현지다움에 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액팅이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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