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0주년 커버에 오를 주인공을 찾는 셀럽챔프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부지런히 투표를 도모해준 팬들의 모습에 뭉클할 것 같다.
믿기지 않는다. 투표에 참여해준 모든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언제나 나에게 너무 크고 과분한 사랑을 주는 분들이다. 앞으로 더 좋은 연기,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이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은 <선재 업고 튀어> 이후, 드라마 차기작으로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을 선택했다.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은 어떤 부류의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작품인가.
차기작에서는 구미호 역할을 맡았다. 인간이 아닌 캐릭터는 처음인데, 그런 만큼 더 자유롭게 해석하고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 900살 구미호인 은호가 인간 시열이를 만나 좌충우돌 소동을 벌이는 로맨틱코미디다. 많은 분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배우 김혜윤이 거쳐온 작품들은 모두 안정적인 사랑을 받았다. 흥행한 작품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대본을 읽고 작품을 선정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편이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드는 순간 이미 그 작품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선택했던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들. 아마도 요즘의 김혜윤은 그런 점을 추구하고 있나보다.
- 김혜윤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배우 스스로 그 캐릭터가 되어버린 느낌을 준다. 그렇기에 필모그래피의 장르가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연기해온 캐릭터들이 비슷하게 느껴진 경우는 없다. 작품과 캐릭터 분석이 면밀하기 때문일 듯한데.
대본을 무조건 많이 읽는다. 많이 읽다보면 작품이 전반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 캐릭터가 작품 안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가 점점 명확해진다. 혼자 있을 때면 늘 대본을 정독하며 기댄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즉흥적으로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감독님과 의논을 많이 하면서 그림을 그려간다.
- 캐릭터의 성향이나 선택이 납득되지 않는 순간도 종종 있을 텐데. 이런 경우 나와 캐릭터의 간극을 어떻게 줄이는 편인가.
인간 김혜윤으로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그 캐릭터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늘 보인다. 그 지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캐릭터의 전사나 삶의 관점, 태도 등으로 계속 새롭게 바라보려 한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 감독님이나 작가님에게 솔직하게 여쭤본다.
- 하이틴 로맨스 <어쩌다 발견한 하루> <선재 업고 튀어> 등에서는 명랑하지만 간헐적으로 간지러운 대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대사를 김혜윤 배우가 발화하는 순간 간지러움은 귀여움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장면들을 다루는 자기만의 방식이나 기술이 있나.
일단 여러 가지 버전을 준비해둔다. 대안이 많아야 안전하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낯간지러운 대사나 장면일수록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다. 그 장면이나 대사가 아무리 민망해도 감정을 진중하게 전달하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오그라든다고 생각하지 않더라. 그래서 하이틴 소설 같은 대사는 오히려 더 진지하게, 진심을 담아 하려 한다.
- 필모그래피로 더 들어가 이야기해보자. 김혜윤의 별명이 팬들 사이에 여전히 ‘예서’, ‘마멜 공주’로 남아 있는 건 그만큼 <SKY 캐슬>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극 중후반부터 예서의 들끓는 혼란스러움을 계속 표현해야 했기에 쉽지 않았을 듯하다. 감정의 강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예서의 정서적 불안과 혼란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에는 체력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런 장면이 연달아 나올 때면 조현탁 감독님이 현장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예서는 그런 노력과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작품을 다시 보면 부족한 점도 많이 보이고 앳된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만 그때의 나였기 때문에, 그때의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 다시 예서가 된다면 다른 연기가 나올 것 같지만! (웃음)
- 그다음 차기작으로 만난 게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은단오다. 김혜윤 배우가 과거 7년 동안 단역 출연을 50편 넘게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주인공이 되고 싶은 단오의 이야기가 완전히 타인의 이야기로만 다가오진 않았을 것 같다.
만화책에선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단오의 인생에서만큼은 단오가 주인공이다. 아무리 비중이 적은 조연이더라도 단오가 없었다면 만화책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주목받는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존재가 이 세상에 얼마나 필요지, 그걸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좋았다.
- <선재 업고 튀어>의 솔이와 단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꿀 주체적인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불안과 우울이 잠식한 세상에서 단오와 솔이의 모습은 어떤 희망처럼 비칠 수 있을까.
단오와 솔이의 상황과 배경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두 인물 모두 공통적으로 본인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저항하고 고군분투한다. 둘은 아무리 넘어지고 다쳐도 툭툭 털고 일어선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싶어 한다. 단오와 솔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
-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장편 작품에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면 좋겠다”고 바랐던 과거의 소원을 이뤄주듯, 은단오의 분량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당시 링거 투혼을 하기도 했다.
체력적으로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단단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시기를 잘 버티고 통과해준 과거의 김혜윤에게 고맙다. 그 덕에 오늘이 왔다.
- <어사와 조이>를 통해서는 언변을 펼치는 직업물이자 사극 장르를 복합적으로 보여주었다. 현대물에 주로 출연했던 김혜윤에게 사극 장르는 어떤 경험으로 남았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고 과거를 간접경험할 기회여서 <어사와 조이>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 애드리브를 할 때 우리가 평소에 외래어를 그렇게 많이 쓰는지 몰랐다. (웃음) 그런 사소한 습관과 제약까지도 넓게 둘러보고 신경 쓰는 경험을 했다.
- 그리고 이어진 <불도저에 탄 소녀>. 당시 한창 통통 튀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던 중이라 독립영화에, 심지어 불같이 타오르는 혜영을 연기한 것에 모두 놀라워했다. 대중에 보편적으로 인식된 이미지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는데.
단오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혜영이를 만났다. 단오는 표정이나 행동이 굉장히 다양하고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면 혜영이는 정반대였다. 그래서 혜영이를 그릴 때에는 단오와 다르게 감정을 속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손끝이 움직이거나 미세하게 변화하는 얼굴근육들. 최대한 감정을 꾹꾹 누르고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캐릭터를 넓혀가는 동안 ‘나한테 이런 면이 있다고?’, ‘내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하며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역할을 구현하면서 더 많이 놀라고 싶다.
- 유튜브 채널 <보라다방>에 나와 “막막한 생각이 들 때마다 계단형 성장을 하자고 마음먹었다”는 말을 했다. 김혜윤에게 계단형 성장 이란.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막막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 계단형 성장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내일, 모레, 다음주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루에 운동 한 시간 하기, 영화 한편 보기처럼. 소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자산으로 쌓이는 일들이다. 긴 터널을 지나는 것만 같을 때 작은 계획을 세워보시면 좋겠다. 그러면 어느새 막막한 순간들을 지나와 있을 것이다.
-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의 김혜윤에게 찾아가 한마디 전할 수 있다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너 자신을 믿어, 혜윤아.
- 이번 셀럽챔프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1위를 했다. 김혜윤 배우에게 팬들은 어떤 의미인가.
그저 연기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내 연기를 보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해 문을 열 때마다 어디선가 사랑만 골라 담은 응원이 전달된다. 다음 문을 여는 순간 두렵고 긴장되는데 그 응원으로 어느새 근심이 설렘이 된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건 그 목소리들 덕분이다. 내 삶에서 팬들을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꼭 어떤 앙케트나 투표,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하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새로 계획할 때마다 느껴지는 시선 속에서 팬들의 사랑을 느낀다. 항상 너무 감사하다. 나도 여러분을 무척 크고 넓게 사랑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