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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충실한 이해의 말들,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5-04-01

- <폭싹 속았수다>에는 얄궂은 인물은 있을지언정 악역은 없어요. 금명이를 몰아세웠던 영범의 어머니 부용(강명주)도 그 이후의 노년기를 보여주면서 연민과 이해의 기회를 주고요. 상길(최대훈) 또한 애순네 집안과 연결되면서 이면을 보여줍니다. 애순이와 금명이가 되었던 사람으로서 이런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이런 너그러움이 사실은 정말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임상춘 작가님 글은 무척 동화 같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동화와 현실을 오가면서 사람의 마음을 홍야 홍야 녹여버리시잖아요.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상길에게 이해의 기회가 가는 건 처음에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우리가 상길이도 이해해야 할까요? 하고요. 대본의 모든 부분을 납득하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감독님께 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우리가 상길이를 두고 ‘짜잔! 사실 상길이는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하는 게 아니에요. 상길이는 탈바꿈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과거부터 쌓여온 자신의 업보를 착실히 수행하면서 늙어가고 있고, 그사이에 이전과 달라진 구석이 생겼을 뿐인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거예요. 20대의 내가 40대의 나와 같을 리 없잖아요. 더구나 상길이 주변에는 어진 사람이 많아서 그런 이해 의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여전히 세상에 관계와 연결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고요.

- 작품 속에는 애순·금명이와 함께 연대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요. 애순의 고생을 이해하는 민옥(엄지원), 서로의 그림자를 아는 영란(채서안), 금명이 편에 서준 교수님(김국희), 잔소리는 기분 나쁘지만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아는 제니(김수안), 애순부터 금명이까지 세대적으로 연결된 가정부 선생님(남권아)까지. 아이유에겐 어떤가요? 더 오래 교류할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와 친구하고 싶나요.

영란이요. 영란이가 16부까지 한겹 한겹 스스로 이뤄가는 성장의 과정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또 영란이는 젊은 시절 애순이를 존중해줬어요. 학씨 아저씨(푸하하!) 상길이가 선장이기 때문에 상길과 관식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은 그들의 아내에게도 그 차이가 작용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영란의 집에서 둘이 대화를 나눌 때 영란이는 애순의 말을 경청하고 감정을 받아주기도 해요. 또 애순이가 계장이 됐을 때에도 “나는 애순이 뽑았다”고 말해주기도 하고요. 아마 영란이도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애순이가 멋지다고요. 영란이는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똑똑한 여자를 만난다면 회사에 스카우트해서 같이 일할래요.

- 친구가 되는 건데 함께 또 일을 하네요. (웃음) 이번 <폭싹 속았수다>의 홍보 과정에 가장 뇌리에 남은 건 <가요무대>였어요. 실제로 작품 안에 <가요무대>가 나오기 때문에 세계관과 현실이 바짝 연결되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선곡부터 개사까지 작품 색을 그대로 이어갔죠.

전적으로 박보검씨의 의견이었어요. 2024년 봄즈음 홍보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해주었기 때문에 작품 공개로부터 1년여 정도 일찍 계획을 세웠어요. 보검씨의 에너지는 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가사는 연습하면서 같이 바꿔나갔어요. 저희의 의견을 받아주신 <가요무대>도 너무 감사드려요. 저희를 너~무 환대해주셨거든요. 오히려 넷플릭스에서는 마케팅을 위해 배우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어요. 부담주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대기업이라 그런가봐…. (웃음) 근데 그 덕에 배우들이 더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섰어요. 제가 선배님들께 “선배님 저는 이런 거 이런 거 하려고요” 하면 선배님들은 “나는 이런 걸 해볼까봐~” 하시며 엄청 의욕을 불태웠거든요.

- 배우 아이유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서사 중심의 작품이 많아요. 의외로 문제 해결이 중심이 되는 직업물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요. 이게 아이유의 취향 혹은 선호라 볼 수 있을까요.

캐릭터나 장르에 따로 제한을 두진 않아요. 근데 생각보다 일하는 과정에 타이밍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작품 무드나 캐릭터 설정에 관심이 생길 즈음 그런 대본이 딱 들어올 때가 있거든요. 저의 관심사와 마음 상태도 계속 달라지잖아요. 그때 마침 그것들에 맞는 좋은 작품들이 올 때가 있어요. 물론 캐릭터 설정도 중요하고, 제가 이 인물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나 가늠하는 정도도 중요해요. 아무리 대작이어도 제가 이입하기 어려우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거든요. 반면 내가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하고 싶고, 하고 싶어서 막 조급해지는 인물들이 있어요. 그건 제가 절대 놓치지 않죠.

- 2011년 <드림하이>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으니 벌써 14년이 흘렀어요. 이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수 아이유의 시간이 배우로서의 시간을 출력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요. 필숙과 아이유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분노 장면이 화제가 되었던 <최고다 이순신>도 아이유의 발성이 그를 뒷받침해줬죠. 배우로서 가능성을 인지시켰던 구간이에요.

이때는 너무 어리고 겁도 별로 없고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어요. 진짜 제가 제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럼에도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가수로 데뷔했고 이름이 알려진 상태니까 저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라는 걸요.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쉽게 받은 기회일 수 있다는 것도요. 그래서 필숙이부터 연기에 대한 책임이 엄청 강했어요. <최고다 이순신>은 첫 주연인데 50부작 장편에 선배님들, 선생님들과 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무탈하게 마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크고 작은 조언과 세심한 마음들이 없었으면 절대 완수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상대 배역인 조정석 배우의 도움도 무척 컸고요.

- <프로듀사>에서는 신디로서 내레이션 작업을 많이 했죠. 특히 소설 <데미안> 속 한 구절을 읽은 게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바로 지금, 틀림없이 나의 연인이 내게로 오고 있을 거라고. 다음 길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거라고. 다음번 창문에서 나를 부를 거라고.” 강단 있고 고집 센 신디의 여린 구석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해요.

신디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적 공통분모가 가장 겹쳤던 캐릭터였어요. 마침 제가 소설 <데미안>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이때 겉으로 모두 드러내기보다 안에 담긴 설정을 드문드문 보여주는 연기를 배웠던 것 같아요. 신디에겐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설정들이 있었거든요. 불면증이 있다거나, 밖에서는 위악적으로 굴더라도 혼자 있을 때에는 많이 우는. 숨겨진 속마음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게 컸어요.

- 그 이후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와 <나의 아저씨>를 이어갔어요. 이 시기부터 배우 아이유가 자기 자리를 주도적으로 찾아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자신과 맞는 서사 중심의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축해냈죠. 특히 <달의 연인>은 감정 소모가 힘들어서 N차 시청이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 감정을 이끌어낸 당사자로서 기억이 어떤가요.

<달의 연인>은 모든 필모그래피 중에서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에요.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1인2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격이 달라지는 연기를 했네요. 많이 어려웠어요. 부담도 됐고요. 또 많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각각의 화학작용을 드러내야 해서 분량도 정말 많았어요. 그렇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법을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면서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달의 연인>은 모든 이들과 되게 끈끈해요. 산에서 구르고 넘어지면서 전우애 같은 게 생겼거든요. 힘들어도 그 사이사이에 어떻게든 웃는 법을 찾아나갔던 작품이에요.

- 2022년 영화 <브로커>가 개봉하면서 칸영화제를 방문했어요. 무려 팬들에게 한 템포 쉬어간다고 말한 해였는데 배우 아이유에겐 분기점이 된 시기가 되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께 작품 제안이 오다니! 제가 또 감독님 작품들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감독님께서 풀어내는 한국 정서가 너무 궁금했어요. 촬영 현장이 시끌벅적하진 않았어요. 침착하고 차분했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또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냉정함을 잃지 않는 법,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해가는 법. 관찰자로서 많이 배웠어요. 칸영화제에 간 것도 정말 꿈 같아요. (손 하트를 보여주자) 아, 그쵸. 제가 언제 칸에서 손 하트를 해보겠어요. (웃음) 제가 그곳에 간 사진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 세상에 증거물이 남아 있지 않다면 제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지금도 믿지 못할 거예요.

마지막 노래는 기꺼이 당신과 함께

지금까지 배우 아이유가 체화해온 인물들에게 가수 아이유가 노래를 선물한다면 그건 어떤 노래일까. 어떤 노래여야만 할까.

<드림하이> 김필숙

“왠지 귀여운 노래를 주고 싶은데. <Unlucky>요. 필숙이는 오뚝이 같아요. 나름 슬픔도 좌절도 있지만 그것들을 무겁지 않게 극복해나가거든요. <Unlucky>는 행운이 주어져야만 좋은 삶인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노래예요. ‘행운 없이도 난 알아서 잘하는데?’ 하고 모든 불행을 튕겨내죠.”

<프로듀사> 신디

“신디… 어려운데요? 신디에게는 <스물셋>을 주고 싶어요. 실제로 스물셋에 연기했던 작품이고요, 신디도 스물세살이었어요. 신디는 야망도 있지만 순수한 사랑을 바라고요, 다 죽여버려! 하고 외치다가도 마음속에 상흔이 남아 있어요. 그런 혼란스러움에도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호텔 델루나> 장만월

“만월이가 제일 어렵네…. (한참 침묵) 화려한데 애환이 있는 노래가 뭐가 있지… 아! <Shopper>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만월이는 욕심이 엄청 많아서 세상의 모든 걸 다 갖고 싶어 하거든요. 뻔뻔하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더더욱 뻔뻔해지라고, 더 욕심내라고 <Shopper>를 선물하겠어요.”

<브로커> 소영

“소영이 옆에 <나의 아저씨> 지안이가 있다면 함께 <무릎>을 선물하고 싶어요. 혹은 <정거장>이라는 노래도 좋겠어요. 두 친구 모두 기댈 곳이 필요한 친구들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들에게 기대서 잠들 수 있는 무릎이 있으면 좋겠어요. 스르르르 잠들 수 있도록. 지안이가 그런 말도 해요. 지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에 드냐고. 두 친구가 아무 고민 없이 잠들기를 바라요.”

<폭싹 속았수다> 애순

“사랑스러운 애순이에게는 정말 많은 노래를 주고 싶은데. 보검씨가 아이디어를 준 노래가 생각나요. 양희은 선생님과 불렀던 <한낮의 꿈>이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보검씨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애순과 관식의 노래 같았어요. 기댈 수 있는 사람 어디 없냐고 묻지만 그게 서로인 거죠. 한낮에 꿈을 꾸듯 단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요. 특히 동명이 사건 이후 서로의 슬픔을 가장 잘 아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노래의 목소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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