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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어여쁘고 아꼬운 당신,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5-04-01

- 4주 동안 봄여름가을겨울까지 총 16부가 모두 공개되었어요.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유독 배우 아이유의 남다른 애정이 느껴져요. 이토록 열렬히 사랑한 것과 작별하는 기분은 어때요.

그게 밖으로도 다 보이는군요? (웃음) 맞아요. 다른 때에 비해 더 많이 아쉬워요. 18년 동안 활동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주목을 크게 받는 때가 있고 생각보다 조용히 흘러가는 때가 있어요. 그동안 넓은 진폭의 감정과 상황을 전부 느껴봤다고 생각했는데도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된 이후엔 지인들로부터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가수와 연기 활동 통틀어 <좋은 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응원을 받은 것 같아요. 다들 즐겁게 누리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그게 너무 감사해요. 한달이 이렇게 짧았나 싶기도 하고요. <폭싹 속았수다> 공개를 기다리던 1년은 너무 길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3월은 정말이지 호로록 지나갔어요. 봄처럼 호로록.

내내 어여쁘고 아꼬운 당신

- 본래 대본을 보면서 잘 우는 성격이 아닌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많이 울었다고요. 텍스트 버전의 <폭싹 속았수다>는 어땠나요.

임상춘 작가님과의 첫 작업이라 더 그랬겠지만, 너무 깜짝 놀랐어요. 모든 장면 묘사가 너무 정확하고 구체적이었거든요. 대사뿐만 아니라 언어 이외에 남는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눈앞에 그려지도록 써 있었어요. 연출과 다름없을 정도로 상세한 묘사였죠. 김원석 감독님께서도 그러시더라고요. 너무 두근거리면서도 너무 어려운 대본이라고요. 모든 배우들의 마음이 똑같았을 거예요. 정확한 만큼 모든 상상을 그대로 구현해내고 싶었거든요.

- 유튜브 채널 <살롱드립2>에 출연해 임상춘 작가에게 눈물 셀카를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어요. 문득 궁금해요. 어떤 장면이었나요.

여러 번 울어서 조금 희미하지만, 두 장면이 짐작돼요. 첫 번째는 나문희 선생님과 염혜란 선배님 파트. 나문희 선생님의 역할인 춘옥이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요. 특히 저는 할머니와 무척 애틋해서 이런 이야기에 눈물 장벽이 낮은 편이에요. 근데 그 장면의 대사와 감정이 유독 아리더라고요. 우리 작가님은 자극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세요. 계속해서 뭉근하게 저으며 끓이다가 꾸덕해지는 마음으로 접근하시거든요. 춘옥과 광례(염혜란)의 이별이 그랬어요. 공들여진 이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또 두 번째는 금명이가 영범(이준영)이와 헤어지던 장면이 떠올라요. 작품 속에서 금명이가 영범이와 오래 만났다고 언급되긴 하지만 애순과 관식의 감정만큼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아요. 오히려 생략된 지점이 많죠. 뚜렷한 데이트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요. 그래서 상상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이들의 사랑은 어땠을까, 두 친구는 어떻게 유대감을 쌓아왔을까 어림짐작하면서요. 그런데 이별 신만큼은 또 너무 구체적이고 정확한 거예요. 그때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작품이 다루지 않았던 이 둘의 긴 연애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금명이와 영범이의 이별은 이 둘이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 가장 선명한 사랑을 보여준 장면이 헤어짐이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애처롭게 느껴져요.

7년간의 연애. 금명이로서 제가 머리로 외워야 했던 설정이었는데 그 장면만큼은 그동안 누적된 시간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이되는 느낌이었어요. 7년간 사랑한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하겠구나. 작가님은 혹여 이런 사랑을 통과해온 것일까, 하면서요. 마지막에 금명이는 꾹꾹 참아요. 오늘 나는 무조건 헤어진다는 결심을 안고 있고, 반면 영범이는 오늘 무조건 금명이의 마음을 돌린다는 또 다른 결심을 품고 있죠. 둘은 양극단에 선 서로의 결심을 감지했을 거예요. 특히 대사가 너무 현실적이에요.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면서 “아, 박영범 냄새”라고 하는 말. 아마도 금명이에게서 영범이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시간도 있었겠죠.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냄새를 느낄 때마다 영범이를 가슴 아프게 기억할 테고요. 몹시 정확하면서도 장면 바깥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 눈물 셀카 장면을 설명하면서 “우리 작가님”이란 표현을 썼어요.

저도 모르게. (웃음) 제가 작가님을 너무 사랑하게 됐거든요. 작가님을 자주 만나뵌 것은 아니지만 애순이와 금명이의 삶을 통해 아주 긴 대화를 나눈 기분이에요. 게다가 늘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세요.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된 뒤에 제가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작가님께서도 장문의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꼭 편지 같죠. 리본까지 예쁘게 묶인 선물들 있잖아요. 작가님의 긴 서신을 받는 날이면 그런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아요.

- 영화 <브로커>의 소영을 통해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했지만 정서적으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 임신·출산·육아를 정통으로 거쳐가는 과정을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엄마가 되어본 시간은 어땠나요. 어린 애순이가 된 ‘엄마’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궁금해요.

애순이가 첫아이를 가진 건 18살 때예요. 당시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애순이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건 사실이에요. 또 워낙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고요. 4막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내가 경험이 없어서 좋은 엄마가 못 될까 걱정이었다”고. 이 말이 엄마가 된 애순이의 많은 걸 힌트처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아이에게 올곧은 사랑을 주지 못하면 어쩌지. 금명이를 애지중지 키운 이유도 아마도 이 걱정에서 비롯했을 거예요. 또 금명이가 딸이었던 만큼 자신을 투영했을 테고요. 나의 첫째 딸에게는 사랑에 대한 결핍을 주지 않겠노라는 마음이 애순이의 중심축을 이뤘을 거라 생각했어요.

과정을 소중하게, 사람을 귀하게

- 금명, 은명, 동명. 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신체적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계속 복대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어요.

김원석 감독님은 소품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하시거든요. 그래서 복대도 사이즈별로 준비해주셨어요. 사람 체구에 따라서 어떤 크기는 어색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임부복을 입었을 때 너무 티가 안 나도 안되고 너무 작위적으로 보여도 안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금명이를 임신했을 때, 은명이를 임신했을 때, 그리고 동명이까지 모두 다른 크기의 복대를 체크했어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첫째 때에는 배가 크게 부르지 않았는데 둘째 때에는 훨씬 크게 부르는. 이 과정에서 저도 주변 사람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어요. 사람마다 경우가 제각각이니까요. 그런데 복대가 생각보다 무거워요. 그래서 자연스레 허리를 짚게 되더라고요. (웃음) 자개장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다리를 벌리고 앉은 것도 모두 복대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세가 바뀐 거예요.

- 단칸방 주인 할머니께서 어린 세입자에게 “고찌글라 고찌가, 고찌글면 백리 길도 십리 된다” (같이 가자 같이 가. 같이 가면 백리 길도 십리 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애순의 눈물은 다른 곳이 아닌 만삭의 배 위로 떨어지죠.

대본에 눈물이 떨어지는 타이밍까지 명확하게 적혀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애순이의 눈물이 배 위로 뚝 떨어진다고요. 이 장면을 촬영할 즈음엔 타이밍 계산에 익숙해져서 정말 신기하게도 눈물이 바로 났어요. 저절로 그렇게 돼요. 할머니 목소리로 따뜻한 대사를 듣는 순간 바로 눈물이 나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작가님도 이 장면을 쓰면서 울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 대사가 나올 즈음에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아신 게 아닐까, 하고요.

- 이번 작품에 주어진 미션 중 하나는 1인2역이에요. 젊은 애순과 금명이를 연기했는데요. 애순과 금명을 접근하는 방식은 모녀 관계의 특수성과 비슷합니다. 모녀인 만큼 둘은 닮아 있지만 금명이는 다음 세대로서 자기만의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어야 해요.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이와 관식이가 주인공인 작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상세히 표현돼 있어 애순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반면 금명이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캐릭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애순과 관식의 모든 역사를 따라왔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훌륭한 부모인지 잘 알잖아요. 그런데 금명이는 이들에게 툴툴거린단 말이죠. 도대체 금명의 그늘은 어디서 왔을까. 저는 이걸 알고 싶었어요. 이 지점을 고민하는 데 시간도 꽤 걸렸고요. 저도 저희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엄마 같지도 아빠 같지도 않은 순간이 있거든요. 그래서 금명이도 꼭 애순이 같지도 관식이 같지도 않은, 금명이만의 인생이 지닌 슬픔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까지가 저를 대입해본 상상이고요, 작품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마도 동명이를 잃었던 슬픔이 빈틈을 만든 것 같아요. 금명이는 크게 티 내지 않아도 자기 때문에 동생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견고한 죄책감이 마음속에 묻혀 있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이 된 금명이가 “문제 하나 틀렸어” 하고 툴툴대며 성적표를 갖다주는데 그때 애순이 표정이 반짝 밝아져요. 대본에도 그렇게 표현돼요. “잠시 밝은 기색이 돈다”고. 금명이는 자신이 부모님을 위로해줄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찾은 거죠. 서울대 합격증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밝은 모습으로 무탈하게 그 목표를 잘 수행해왔는데 서울에 가는 순간 진짜 금명이가 홀로 통과해가야 할 것들이 등장하면서 금명이 안에 그늘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삶과 다른 대도시의 생활양식, 경제적 차이가 확연한 연인과의 거리감, 외로운 객지 생활…. 장녀로서 켜켜이 쌓아온 부담감에 일찍 철 든 아이는 4부에서 결국 마음의 둑방을 무너뜨리지만 그가 그렇게 잘 살고 싶은 이유 또한 가족이었다는 점에서 금명이의 삶이 잘 드러나요.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 금명이 시선에서 내레이션이 이어지는데요. 어떤 구간은 ‘이거 너무 낮은 거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들기도 해요. (웃음)

저도 그래서 녹음하면서 감독님께 “지금 너무 낮나요?” 하고 많이 물었어요. 그런데 이건 사실 50대 금명이의 목소리거든요. 중년이 된 금명이가 애순이의 어린 시절부터 쭉 돌아봐주는 관점이기 때문에 차분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어요. 물론 저도 중간중간 밝고 경쾌하게 내레이션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 변주가 아주 허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김원석 감독님께서 “50대의 금명이 목소리라는 걸 잊어선 안됩니다~” 하고 계속 주지시켜주셨어요.

- 몇몇 장면을 더 깊이 들어가볼까요. 이제 막 배를 사고 둘째를 출산한 애순이는 시댁에서 전과 다른 대접을 받아요. 애순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관식에게 대꾸하지만 사실상 시어머니를 겨냥한 말을 하기도 해요. “어머님 나 좋아해! 아들 손주에~ 선장에다가~ 은수저에다가~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 없지. 미워하면 그거 되~게 이상한 거 아니야?” 애순의 귀엽고 명랑한 능글맞음은 어떻게 형성된 걸까요.

저는 애순이가 두 아이를 낳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흘러서 전보다 여유로워지고 능청스러워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래서 의견을 냈는데 감독님께서 두 가지 버전으로 촬영해보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능청스러운 버전과 덜 능청스러운 버전으로요. 애순이가 워낙 문학 소녀고 섬세한 친구다 보니까 너무 다른 면으로 기우는 건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해녀 이모들에게 “원래가요, 단칸방에서도 의지만 있으면 육남매 다 내요” 하고 말하는 장면도 동일하게 두 버전이 있었어요. 나중에 보았을 땐 시어머니께 말하는 장면은 능청스러운 버전이, 해녀 이모들과 말하는 장면은 덜 능청스러운 버전이 선택되었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애순이의 균형을 잡아주신 것 같아요. 대단한 장면은 아닐 수 있지만 이제 계옥(오민애)과 묵은 감정을 다 털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 작품이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을 다루는 만큼 대선배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에요.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애순이에게 나문희 선생님 목소리로 “왜? 고달퍼?” 하고 건네지는 질문은 화면 밖으로 힘을 뻗어 슬픔을 간직한 모든 사람들을 다독여줘요.

사실 지금 인터뷰하기 직전에 나문희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지은. 먹는 것도 열심히 먹고 울 때 두손 받쳐 열심히 울어. 고마워. 항상 몸 건강해”라고요. 현장에서도 선생님은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하세요. 제가 나문희 선생님을 너무 사랑해서 언젠가 꼭 한번 작품을 함께해보고 싶었는데 행운처럼 <폭싹 속았수다>에서 만난 거예요. 이 장면을 찍던 날 촬영 직전에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현장에 앉아 계시는데 그 분위기에 바로 압도되었어요. 공기 자체가 차분하고 안정적이더라고요.

- 애순이의 비통함이 극에 달하던, 셋째 동명이를 잃은 장면은 고밀도로 응축된 감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센 비바람과 싸워야 했어요.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 신은 며칠에 걸쳐 촬영했어요. 배우, 스태프 모두 너무 고생이 많았죠. 폭풍우를 표현하기 위해 강풍기를 대동한 강도 높은 비바람은 거의 물벼락에 가까웠어요. 얼이 조금 빠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때 감독님, 작가님 모두 애순이와 관식이의 대비를 강조하셨어요. 애순이는 평소 울보지만 오히려 이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요. 대신 무쇠가 완전히 무너지죠. 제가 조금이라도 눈가가 빨개지려고 하면 감독님께서 “애순이는 지금 울지 않아요~” 하면서 집중하도록 도와주셨어요. 이때 박보검씨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계속 넘어져야 하니까 무릎 보호대도 했고요. 그런데 동명이 역할을 한 새벽이가 정말 프로예요. 평소에는 장난치기 좋아하는데 슛만 들어가면 완전히 돌변해요. 편히 누워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힘없이 손이 떨어지고 목이 꺾이는 장면이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둘이 같이 상의도 많이 하고. 정말 좋은 동료였어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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