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꿈이나 목표 없이 살아가던 용준은 취업 준비를 하던 중 부모님의 가게에서 배달 일을 돕게 된다. 도시락 배달을 하다 우연히 마주친 여름(노윤서)에게 용준은 첫눈에 반한다. 여름이가 용준의 존재를 자각하는 속도는 본인의 것에 비하면 한없이 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곧게 여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청설>을 보다보면 용준을 직진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지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배우 홍경은 ‘첫사랑’이라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용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청설>은 영화 <댓글부대>, 드라마 <악귀> <약한영웅 Class 1>에서 한동안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배우 홍경의 청량한 얼굴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다. “쏟은 시간과 마음이 <청설>에 잘 담긴 것 같아 몽글몽글하다”라는 그의 말에서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청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여러 이유가 있다. 요즘 20대 배우들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통해 우리 세대의 초상을 그릴 기회가 많지 않은데 <청설>에서는 나와 (노)윤서 배우, (김)민주 배우가 지금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첫사랑은 찰나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진귀하고, 잔향 또한 깊게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사랑의 의미에 관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언젠가 해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영화를 통해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다 <청설> 대본을 받았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깨닫고 그렇게 자신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걸 용준이를 보면서 느꼈고, 그게 무척 흥미로웠다. 노윤서 배우가 먼저 캐스팅이 된 상태였는데 윤서 배우와 함께라면 극 중 파트너로서 작품을 잘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 여름, 가을(김민주)이와 수화로 대화할 때 손과 몸의 움직임에서 그간의 연습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제작사에서 3개월가량 연습할 시간을 주었고, 배우들끼리 수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영화의 테마와도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수어를 배우면서 느낀 건 결국 ‘어떻게 마음을 전할 것인가’였다. 육성으로 대화하면 상대방을 보지 않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수어를 하면 상대방과 눈을 맞춰야 하고 또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뭘 느끼는지 온 신경을 집중하며 마음을 쏟아야 한다. 손동작의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들을지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수어 선생님들도 그걸 강조하셨다. 그래서 수어가 어느 정도 손에 익은 뒤에는 상대에게 더 집중하려고 했다. 이걸 체감한 뒤로 <청설>에 참여하게 된 의미를 크게 느꼈다.
- 용준이 굉장히 용감한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꼈나.
용준이는 여름이를 만나기 전에 색채가 없는 세상에서 살았지만, 여름이를 만난 후로는 세상이 다채로워진다. 그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하게 됐을 때,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겁을 먹을 수도 있고 움츠러들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용준이는 여름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을 한다. 가을이에게 온 애정을 쏟는 여름이를 사랑하고부터 용준이의 삶도 조금씩 변화하는 거다. 그런 마음을 ‘용감하다’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무척 인상 깊게 남았다. 그러면서도 여름이에 대한 마음을 부담스럽게 펴내는 게 아니라 여름이가 불편해하지 않게 다가가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용준이를 보며 크게 감탄했다.
- 여름이가 가을이를 걱정하느라 용준이와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 용준은 여름이를 한참 기다리다가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크게 표출한다.
그 주차장 신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용준이가 여름이를 기다리고, 걱정하고, 애달파하고 또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상처받는 그 모든 과정을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용준이는 물러섬 없이 그 모든 감정을 정면으로 받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는 데에서 용준이가 어떤 친구인지 확실히 느껴졌다. 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여름이에게 다가가고 배려하다가 그 얼음판이 깨지면서 용준이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좋았다.
- 용준이를 보면서 사랑을 시작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건 단순히 언어와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용준이란 캐릭터를 연기한 뒤 사랑에 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지점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사랑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작용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환경적인 문제가 큰 것 같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사랑은 순수하고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청설>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완벽히 이해하진 못해도 가닿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용준이도, 여름이도, 가을이도 모두 그렇다. 그런 게 얼마나 소중하고 또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쑥스러워서 잘 이야기하지 못했던 건데 사실 나는 용준이처럼 솔직하지를 못했다. 그런 순간에 작아지고, 숨어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용준이를 만나고 나서 마음이 조금은 열렸다. 좀더 솔직해지고, 진심이 거절당하더라도 그냥 저질러보는 것. 그런 용준이의 태도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