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은 배우 조재경에게 수많은 처음을 안겨주었다. 처음으로 주연으로서 장편영화의 현장을 경험했고, 출연작 <문경>과 함께 처음으로 전주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으며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잡지의 표지까지 장식했다. <문경>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비구니 스님인 가은으로, 도시 문경에 휴가를 온 문경(류아벨)과 강아지 길순의 주인을 찾아주고자 한다. 말수는 적지만 가은의 눈빛에는 항상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들뜬 표정으로 <씨네21>의 촬영 현장에 임하던 그는 가은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진중해졌다. <문경>을 촬영한 이후로 “편견 없이 사람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작품에 얼마나 깊게 몰입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 오디션을 통해 <문경>에 합류했다. 처음부터 가은 역으로 오디션을 봤나.
= 그렇다. 가은이 문경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이 오디션 현장에서 주어진 대본이었다. 사실 원래 종교는 기독교인데 현재로선 종교를 잠시 내려놓은 상태다. 언젠가 친구와 낙산사에 들러 소원을 빌고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그날 <문경>의 오디션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이 영화를 하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더라. 기운이 좋았다. (웃음)
- 대본을 읽었을 때도 느낌이 좋던가.= 초반부터 인물들이 지닌 상처가 서술되는데 결과적으로 나중에 영화를 볼 관객들의 마음이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가은이 힘든 과거의 상황으로 인해 종교로 도피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준비를 거듭하면서 가은의 마음은 ‘어려움은 내가 다 짊어질 테니 여러분은 괜찮아지셨으면 좋겠다’는 것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가은을 연기할 때 최대한 눈물을 보이지 않고 그가 가진 담담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야 ‘괜찮아져도 돼’라는 가은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 표현이 많지 않은 인물임에도 가은의 속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 가은은 주변 사람들이 편안해지길 바라고, 본인 스스로도 괜찮아지길 원하는 사람이다. 말한 대로 그런 속내를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계속 옆에서 상대를 살피면서 챙겨주는 편에 가깝다. 문경에게도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같은 배경을 묻진 않는다. 그렇지만 계속 시선이 문경에게 가 있다. 문경이 즐거워하면 같이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런 것들이 가은 나름의 위로라고 받아들였다.
- 삭발 외에도 스님의 외형과 몸짓을 구현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 비구니 스님들만 계신 윤필암이라는 절이 있다. 그 곳에서 3~4일 정도 지내며 경한 스님, 현주 스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 스님들과 같이 새벽 3시에 일어나 그분들이 하시는 수행과 옷 접는 법, 김치를 써는 법 등의 사소한 부분까지 전부 배웠다. ‘힘든 건 내가 가져갈 테니 여러분은 평안하셨으면 좋겠다’는 가은의 태도는 윤필암의 스님들에게서 느낀 것이기도 하다. 가은이 절에 있는 장면도 마침 윤필암에서 촬영했는데, 내가 절에 머물며 체감한 것들을 극에 잘 녹여내고 고증도 잘해내고 싶어서 무척 집중했다. 감사하게도 두 스님께서 영화를 보시곤 ‘진짜 스님 같다’고 메시지를 주셨다. (웃음)
- 수많은 선배들과 촬영 현장을 함께했다.
= 다들 엄청난 대선배님들인데 정말 많이 챙겨주셨다. 특히 가은의 독백 장면을 찍을 때 더 그랬다. 워낙 중요한 신이라 오디션 때부터 많이 연습했고 수정도 여러 차례 가해진 상황이었다. 가은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절대 울지 않고 차분히 말하며 상대를 바라보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리딩 때부터 자꾸 눈물이 났다. 그때 최수민 선배님이 “그저 전달하는 거지, 그 상황에 빠지면 안돼”라고 조언해주신 게 큰 힘이 됐다.
- 작품 밖의 이야기도 해보자. 처음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건 언제인가.
= 고등학생 때였다. 영화 <파수꾼>을 보는데 배우가 아니라 정말 그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커서 결국 영화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연출을 전공했다. 내가 다닌 학교엔 연기과가 없어 연기를 배울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 대신 연기학원에 다니고, 극단에서 연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그렇게 어렵게 걷게 된 배우의 길이니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겠다.
= 삭발을 하고 난 뒤로 센 캐릭터, 예를 들면 킬러나 섹슈얼한 느낌의 인물들을 많이 맡았는데 정말 색달랐다. 삭발하기 전에는 발랄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기에 완전히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앞으로는 그런 자극적이고 센 역할도 계속 해보고 싶다.
최근에 <그날의 타이밍>이라는 로맨틱코미디 연극에 참여했는데 당시의 기억이 정말 좋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긴장감이 너무 설레더라.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대학로 연극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 지금의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찰흙덩어리 같다. 현재로선 좀 뭉개져 있는데 앞으론 평평해졌으면 좋겠다. 특정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보다는 그냥 깨끗하고 단정한 상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 운동을 좋아해서 배드민턴을 자주 친다. 최근 파리올림픽에서 활약한 안세영 선수의 경기를 정말 인상 깊게 봤다! 그 밖에는 다른 배우 친구들과 연기 스터디를 꾸준히 하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 그 두개가 전부다. 말하고 나니 스님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웃음)
-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
= 9월 방영 예정인 주말드라마 <다리미 패밀리> 를 현재 촬영 중이다. 내 역할은 아주 작지만 그럼에도 너무 소중해서 열심히 촬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