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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야 했다, <문경> 류아벨
조현나 2024-09-03

배우 류아벨의 예리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문경>에선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류아벨이 연기한 <문경> 속 주인공 문경은 강도 높은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겪는다. 잠시 휴가를 내고 떠난 곳에서 그는 비구니 스님 가은(조재경), 강아지 길순, 길순을 자신의 반려견으로 착각한 할머니(최수민)를 차례로 만난다. 서울의 치열한 일상에선 볼 수 없던, 삶을 대하는 그들의 여유로운 태도를 지켜보며 문경은 많은 것을 느낀다. 영화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도 류아벨은 어깨의 힘을 빼고 다시 주어야 할 타이밍을 기민하게 알아채며 촬영에 임했다.

- 영화에서 도시 문경은 치유와 쉼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전에 문경에 가본 적이 있나.

= 주로 촬영 때 많이 갔다. 영화에선 평화롭게 그려지지만 현장은 늘 치열하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니 경치를 즐길 여유까진 없었다.

- <문경>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출연 제안을 받아 시나리오를 읽게 됐다. 오랜만에 카페에 가서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는데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영화 속 풍경에서 배울 게 많아 보였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기대됐다. ‘나도 이 인물처럼 힐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현장은 현장다웠지만 말이다. (웃음)

-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오늘도 사랑스럽개> 등 한동안 연이어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나. 극중 문경도 엄청난 워커홀릭이다.

= 뻔한 말일 수 있지만 문경은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그런 삶의 패턴이 몸에 익은 사람이다. 거대한 꿈을 꾸거나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하기보다는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일상을 잘 영위한다. 그런 면에선 나나 내 주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 문경은 팀원인 초월(채서안)을 유독 아낀다. 일도 잘하고 성실하지만 좀처럼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초월을 챙겨주는 문경을 보면서 이상적인 팀장이라고 느꼈다.

= 편집이 많이 되어 그래 보이는데 사실 문경이 항상 초월만 챙기는 건 아니다. 또 다른 팀원인 하원(차서현)도 잘 챙긴다. 그럼에도 초월에게 자꾸 시선이 간 건 아마도 자신의 동생과 초월이 겹쳐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하원은 사내 정치를 무척 신경 쓰는 데 반해 초월은 하는 일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보인다. 문경도 사내 정치보다는 맡은 일을 성사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자신과 비슷한 초월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 듯하다.

- 문경은 불의를 잘 참지 않는다. 초월의 편에서 자주 목소리를 내고, 문경에 내려갔을 때도 스님 가은을 돕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 내가 봐도 문경은 용감하다. (웃음) 그렇다고 영웅과 다름없는 인물은 아니다. 자기 양심에 따라 우직하게 살아왔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을 뿐이다. 가은이 준 영향도 있다. 행인들과 말다툼 벌이던 상황을 정리하고 나서 가은을 봤는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가은의 얼굴은 다시 밝아져 있다. 문경의 일상엔 전혀 없던 유형의 캐릭터다. 여행이 결국 그런 것이지 않나. 일상과 다른 환경에 놓이고 싶어 떠나는 건데 가은 역시 그런 여행 한가운데에서 만난 신선한 유형의 존재인 것 이다.

-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안다. 촬영할 때도 캐릭터의 스타일에 대해 의견을 많이 내나.

= 그렇진 않다. 기본적으로는 감독님과 의상감독님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고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경우에만 조금 첨언하는 정도다. 이번에는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긴 했다. 문경이 여행을 떠나는 기간이 길지 않고 계속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옷을 자주 갈아입을 것 같진 않았다. 그 말씀을 드려 결국 지금처럼 문경이 여행 기간 동안 한벌만 입게 됐고. 또 할머니가 잘 챙겨주시니까 할머니의 옷을 빌려 입으면 어떨까 싶었다. 실제로 시나리오엔 없었는데 새롭게 추가된 장면이다.

- 후반부에 문경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신이 있다. 가은과 문경이 서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중요한 신이기도 하다.

=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미리 말씀드렸다. “저는 기타도 못 치고 노래도 못한다”고. 그러자 문경이 노래를 잘하는 애는 아니니까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한곡만 연주하는 거니까 그것만 잘해보자 하고 하루 종일 연습했다, 그러다 사정상 그 신을 촬영하기 일주일 전에 갑자기 노래가 바뀌었다. 설상가상으로 문경에서 연습하던 와중에 기타까지 고장났다. 문경에 악기사가 한곳밖에 없는데, 공교롭게도 주말이라 사장님께 전화드려 사정사정하면서 새 기타를 구했다. ‘기타 강습’이라고 붙어 있길래 간 김에 사장님에게 코드 잡는 방법도 새로 배웠다. (웃음) 일정상 해외에 계신 음악감독님과도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조언을 구했다. 자연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노력했다.

- <문경>은 여러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끔 한다. 이 작품을 촬영한 뒤 달라졌거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

= 정확히 들어맞는 답변은 아니지만, 촬영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촬영을 마친 뒤 제작진이 스님들께 빌린 물품을 반납하러 절에 간다고 하기에 나도 따라갔다가 우연찮게 하룻밤을 묵고 왔다. 그 하루가 너무나 새로웠다. 목탁 소리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기도드리고 스님들의 하루를 똑같이 체험했다. 암자가 있는 곳으로 한번 다녀오라고 스님이 추천하셔서 다녀온 적이 있다. 전날 비가 와서 물안개가 잔뜩 낀 숲길을 혼자 걷는데 마치 요정의 숲을 걷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들의 공간에서 평소와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낸 것인데, 마치 <문경>을 압축해놓은 것 같은 하루를 보낸 경험이 무척 인상 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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