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인터뷰] 이방인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 <한국이 싫어서> 배우 주종혁
이유채 2024-08-20

자신이 가장 잘할 만한 작품을 만날 기회가 배우에게 몇번이나 찾아올까. 배우 주종혁에게 <한국이 싫어서>는 그런 자신감이 들게 한 영화였다. 극 중에서 그가 분한 재인은 3년 전, 학벌 중심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20대 한국 청년이다. 정착한 뉴질랜드에서 이민 온 계나(고아성)를 만나 우정 어린 누나, 동생 사이가 된다. 한 사람을 외형으로 결론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인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의미심장한 역할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 5~6년간 유학 생활을 한 주종혁은 머릿속으로 추억의 사진 앨범을 한장 한장 넘기며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 시절에 보았던 풍경, 만났던 사람, 느꼈던 감정을 모두 끌어내 자기만의 재인을 만들어냈다.

- 첫 등장에서 놀랐다. 빨간 머리에 돌려쓴 스냅백, 반바지에 조리샌들 차림이 <만분의 일초>의 진중한 검도 선수 재우와는 천양지차더라. 무엇보다 재우는 눈으로 말하는 캐릭터였는데 재인은 독특한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버려 더 다르게 느껴졌다.

= 선글라스는 개인 소장품이었다. 힙한 브랜드에서 나온 재밌는 디자인의 제품이라 평소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재인에게 딱 맞아 보여 구매했다. 캐릭터를 처음 소개하는 신에서 눈을 가린 채 등장하면 재인의 독특한 면이 확 살 것 같아 감독님에게 제안했는데 좋아하면서 오케이해주셨다. 헤어, 의상 등 재인의 외형은 뉴질랜드 유학 시절에 내가 본 친구들의 개성 강한 스타일을 반영했다.

- 경험적, 성격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재인을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기회에 자신을 재료로 활용하고자 했나, 아니면 오히려 그것을 경계했나.

= 확실히 전자였다.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유학 시절에 나는 어땠지?’였다. 당시 내가 외국 친구들을 어떤 자세로 대했고 이방인으로서 어떤 불안감을 느꼈는지 계속 곱씹었다. 생각이 단순하지만 자기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갈 줄 아는 재인이 나와 비슷해서 오버랩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땐 영어 잘하는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그쪽을 준비했고 좀더 나이 들어서는 내 이름을 건 호텔을 짓고 싶어 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캐릭터라이징하면서 내 삶을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아마도 재인은 내 인생을 한번 정리해준 캐릭터로 남지 않을까 싶다.

- 그만큼 시나리오 한줄 한줄이 쉬이 넘어갈 수 없었겠다. 가장 공감한 대목이 있다면.

= 계나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버퍼링이 걸려 “괜찮아” “잘 지내” 같은 안부 인사가 끊겨 들리는 부분이 특히 슬펐다. 가족들이 보고 싶은 마음을 나도 잘 아니까. 기댈 곳 없이 혼자가 됐다는 외로움이 재인에게 자연스레 묻어나길 바랐다.

- 촬영차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흥은 주종혁 배우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 언젠가 한번쯤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왠지 용기가 안 나서 주저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동안 왜 그랬나 싶더라. 운명처럼 촬영지가 내가 다닌 대학이 있는 오클랜드였던 터라 쉴 때 대학을 방문해 추억 여행을 했다. 신호를 기다리다가 고등학교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땐 정말 행복했다. 원작에서 호주였던 배경이 뉴질랜드로 바뀐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웃음)

- 비하인드가 궁금한 장면이 있다. 생일 파티 뒤 계나와 담배를 나눠 피우는 담벼락 신은 감독이 배우에게 일임한 신이었나. 유달리 즉흥연기의 날것 같은 느낌이 났다.

= 대본대로 했다. (웃음) 그런데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알겠다. 그 신을 찍으려는데 마침 동네에 태풍이 와서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었다. (고)아성이도 나도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촬영도 어떻게든 주어진 시간 안에 해내느라 정신없었다. 촬영 후반에 찍은 신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달간 뉴질랜드에서 숙소 생활을 하면서 출연 배우들과 가족같이 지냈다. 휴차 때 여행도 하고 스티커 사진도 찍으러 다녔다. 아무래도 우리가 돈독한 사이라는 게 스크린에서도 드러났나 보다.

- 친한 배우 동료들과 연기 스터디를 시작한 지 1년쯤 된 걸로 알고 있다. 실전에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 애초에 어떤 결과를 바라고 스터디를 꾸린 게 아니라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서로 바빠서 정기적으로 진행하지는 못하지만 일단 모이면 초빙한 선생님에게 여러 가지 연기 테크닉을 배우고 그걸 바로 적용해보는 훈련을 함께해나가고 있다.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연기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어서 친한 친구들과 진지하게 연기 연습을 하는 게 오글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몰입도 잘되고 친구들의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도 이 스터디로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는 욕심 없이, 놀이하듯 즐겁게 해볼 생각이다.

-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김혜수 배우와 함께 드라마 <트리거>를 촬영 중인가.

= 얼마 전에 끝났는데 찍는 동안 그랬다. 쉬는 시간까지 행복했던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 지금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웃음) 새로운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일이 이렇게나 좋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