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로 돌아온 웨스 볼 감독을 만났다. 디스토피아 SF영화 <메이즈 러너>로 화려하게 데뷔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웨스 볼 감독은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과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로 <메이즈 러너> 삼부작을 완성, 세 작품으로 전세계에서 10억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웨스 볼 감독은 2012년 유튜브에 업로드한 3D 단편영화 <파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구현해낸 이 8분의 영상을 보면, 그가 인간의 종말로 마무리된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에 어떤 색채를 더할지 궁금해진다. <혹성탈출> 프랜차이즈의 후속편을 맡게 된 계기, 그리고 영화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들었다.
- 차기작으로 <혹성탈출> 시리즈를 선택했다.
= 처음 연출 제안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다. 어린 시절 1968년에 나온 오리지널 <혹성탈출> 비디오테이프를 수도 없이 보면서 자랐고, 이 영화는 내가 SF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될 정도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처음 제안을 거절하고 일주일 정도 됐을 때,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시저가 죽고나서 긴 시간이 지난 후,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천진한 유인원 소년이 진실을 파헤치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이 아이디어를 들고 전 리부트 삼부작의 제작자이자 첫 두편의 각본을 맡았던 릭 자파와 어맨다 실버를 찾아갔다. 사실 릭 자파와 어맨다 실버 역시 처음엔 <혹성탈출>의 또 다른 후속편을 제작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시저의 유산이 잊혀져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설명하자 그들의 눈이 빛났다. 리부트 시리즈에서 시작된 유인원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기까지의 긴 시간, 그 세월 가운데 분명히 매혹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공감대가 바로 형성됐다. 그렇게 리부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유인원들의 청동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제작이 시작됐다.
- <혹성탈출> 시리즈는 전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이번 작품과 전작의 관련성을 설명해 달라.
= 이번 영화는 리부트 시리즈의 주인공인 시저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영화 전반에 걸친 중요한 장치다. 본래 전설은 사후에 시작된다. 시저의 유산 중 어떤 것이 계승되고 어떤 것이 사라져버렸는지 확인하는 게 영화의 중요 관람 포인트다. 따라서 전작을 보지 않았어도 이번 시리즈를 감상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전작의 팬들이라면 충분히 알아채고 즐길 수 있는 세계관의 연결지점들도 많다.
- 지금까지 수십년을 이어온 <혹성탈출> 프랜차이즈를 계승하는 데 부담감은 없었나.
=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다. (웃음) 애초에 이 프로젝트 제안을 받자마자 바로 거절한 것도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감독은 주변부에 휩쓸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제작이 시작된 이후로는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했다. 전작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혹성탈출> 시리즈는 유인원을 통해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전하는 인간에 대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 이번 편은 진실, 지식, 앎의 의미를 탐구한다. 지난 리부트 시리즈에서 시저는 유인원이 따라야 할 법칙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고, 이중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라는 두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전개했다. 그런데 세 번째 조항인 “아는 것이 힘이다”는 지난 시리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를 보다 본격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서는 주인공 노아, 빌런 프록시무스 그리고 유인원 문명 전체에 “아는 것이 힘이다”가 각각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 <혹성탈출> 시리즈는 매번 당시의 세태에 던지는 시의적절한 메시지로도 화제였다.
= 물론 이번 작품에도 진실이란 게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공포가 어떻게 인간을 최악으로 몰아가는지 등 지금 시대를 돌아보게 할 만한 장치들이 있다. 다만 난 작품으로 관객들을 가르칠 의도는 없다. 제작자로서 내가 할 일은 관객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메시지를 얻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 <혹성탈출> 시리즈는 특수효과로도 유명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촬영하는 과정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 유인원을 화면으로 구현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내가 해본 모든 것 중에 가장 어려웠다. 이번 영화는 100% CG인 장면이 많다. 그래서 연기자들이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연기했다. 어떤 구조물도 없다 보니 여러 카메라들이 배경의 위치를 예측해 그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데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고생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유인원 연기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촬영 초반에는 배우들이 유인원처럼 걷고 움직이고 소리내는 것을 어색해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유인원이 아닌 인간이니까. 하지만 유인원처럼 보이는 연기로는 안된다. 유인원이 돼야만 했다. 그래서 배우들이 스스로를 유인원이라고 느끼고 편하게 행동하기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훈련이 시작되고 6주에서 8주 정도 지났을 때 격려차 배우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방에 들어서자 배우들이 장난 삼아 나를 둘러싸고 유인원처럼 소리를 냈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걷는 것부터 소리까지 모두 진짜 유인원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마침내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삼부작의 첫편인가.
= 물론 2, 3편도 고려 중이다.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삼부작,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