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은 이름을 잃은 남자 만재(조진웅)가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만재는 이름을 잃기 전에도 바지 사장 세계에서 명의를 팔며 살았다. 이름을 찾으려 구르고 뛰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남자를, 활동명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사용하는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공교롭다. 조진웅이 <데드맨>의 만재를 이야기하며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감정’이다. 조진웅은 상황별로 만재가 마주하는 즉각의 감정에 몰두했다. 만재의 에너지와 감정 변화를 그래프로 치밀하게 기록하며 그의 심리에 따라 미술과 분장은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지 스탭들과 치열하게 논의해갔다.
스타일리스트 진보람, 윤소영·헤어 김은희·메이크업 김재희·의상협찬 루스플렌, 꼬르떼
- 만재는 그의 대사처럼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다. 만재가 저지른 일들은 분명 범죄지만 또 만재는 잘 살려는 일념하에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만재의 이중적 속성을 어떻게 조정해갔나.=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분명히 해뒀다. “만재는 나쁜 놈이니 절대 미화하면 안된다. 어떻게 해서든 이 범죄자는 나락으로 떨어져봐야 한다”고. 만재가 초반에 겪는 처절한 응징이 없다면 이 역할을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만재의 캐릭터 빌딩을 포함해 감독님과 신 바이 신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며 작품을 완성해갔다. 작품의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내가 출연하지 않는 장면이라도 캐릭터간 어떤 시너지가 오가는지 면밀히 들여다보는 며칠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다가도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 오면 메일을 쓰거나 감독님을 찾아갔다. 하준원 감독님이 무척 수용적인 분이어서 오전 촬영에 의문이 드는 장면이 있다면 그 신을 오후로 미루고 함께 장면을 의논해나갔다. 감독님도 오랜 시간 시나리오를 집필하다 보니 새로운 시각이 개입되길 고대하셨더라. 이를테면 전처 서연과의 관계는 감독님과의 대화 그리고 주변의 자문을 통해 초고에서 가장 많이 변한 장면이다. 감독님도 나도 남성이다 보니 알 수 없는 여성의 심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녀를 둔 몇몇 여성 지인들에게 만재와 같은 결혼 생활의 위기를 겪을 때 어떻게 대처할 거냐고 물었다. 다들 하나같이 치를 떨고 뒤도 돌아보지 않을 거라 하더라. 한 장면이라도 납득이 될 때까지 풀고 들어가야 했다.
- 사설 감옥에서 심 여사(김희애)와 처음으로 접견하는 장면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당시 현장에서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 인상적 순간이라고 하니 생각난다. 사식으로 나온 훠궈가 정말 맛있었다. (일동 폭소) 제작부에서 훠궈 맛집의 훠궈를 공수해주었다. 먹는 장면은 늘 컷간 연결이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연결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계속 먹었다. 정말 맛있어서 김희애 배우에게도 “선배님, 한번 드셔보세요”라며 몇번 권했다. 생각해보면 만재가 수감 생활 중 언제 이런 음식을 먹어봤겠나. 늘 굶주린 상태였을 터라 맛있게 음식을 해치우는 게 캐릭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심 여사의 도움으로 한국에 돌아온 만재는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희주(이수경)와 공조한다. 희주의 아버지 문식(김원해)은 만재와 같은 업계에서 종사하다 비운의 결말을 맞이한다. 딸을 그리워하는 만재가 누군가의 딸과 협업해가는 도식을 염두에 둔 채 연기했나.
= 정작 희주를 맞닥뜨렸을 땐 이 친구도 누군가의 딸이란 연관성까지 떠올리기는 힘들었다. 문식이 나로 인해 불운한 결말을 맞았다는 감정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희주가 상당히 건조한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이수경 배우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울분을 섬세하게 준비해왔다. 그래서 이 친구를 위해서라도 사건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만재는 매번 복잡한 위기에 처하고 접하는 이들도 계속 변한다. 게다가 촬영 현장이라는 곳이 시간 순서대로 작품을 찍을 수 없지 않나. 끊임없이 바뀌는 만재의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했나.
= 유지하려는 만재의 본질이 있었다. 만재가 품는 휴머니티가 필요했다. 다만 휴머니티를 상정해 유지하기보다는 복잡한 플롯 속에서 만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휴머니티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을 예로 든다면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는 애초에 정의로운 사람이고 인생의 주춧돌이 바로 선 사람이다. 그에 반해 만재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아무 생각이 없는 남자다. 늘 눈앞의 위기를 수습하는 데 급급했던 만재가 여러 일을 겪으며 자신의 꿈을 깨닫고 성장해가는 서사가 그려지길 바랐다.
- 배역을 연구할 때 캐릭터의 걸음걸이로부터 시작하는 걸로 안다. <데드맨>을 준비할 때도 이 과정을 거쳤나.
= 캐릭터별로 다르다. 가령 <아가씨>의 코우즈키 백작은 사전에 명확한 설정을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코우즈키를 연기할 때 왼발의 새끼발가락을 고무줄로 묶어두었다. 코우즈키는 여러 이유로 왼쪽 발가락 하나가 없는 캐릭터일 것 같았다. 거기서부터 기립근이 퇴화한 노인의 걸음걸이를 구축해갔다. 반면 만재는 이런 식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매번 다른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만재를 연기할 땐 그저 극 중 상황에 캐릭터를 던져두었다. 만재는 준비하면 ‘망하는’ 캐릭터다.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보다는 상황에 스스로를 던져두고 직관적으로 리액션을 취하는 방식을 취했다.
- <데드맨>의 제작보고회 당시 언급한 “뜨거운 상황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뜨거움을 맞닥뜨리고자 했다”는 말과 상통한다.
= 그렇다. 만재가 관 안에 갇혔을 때, 아내가 자기를 외면했을 때 등의 충격을 설계해두면 실패할 것 같았다. 물론 리허설은 충분히 진행했지만 위협의 순간을 겪을 때마다 만재의 동공이 얼마나 커지는지 직접 맞닥뜨리고 싶었다. 배우로서 그리고 만재로서 그가 겪는 위기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신명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