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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춘의 표상, ‘거래’ 유수빈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23-10-10

결핍과 경험은 성장의 좋은 밑거름이다. 배우 유수빈은 이미 <사랑의 불시착>, <인간실격>, <스타트업>, <D.P.> 시즌2 등 여러 작품에서 활약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모자라고 아쉽다고 고백했다. 성장이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결핍과 갈망에서부터 출발한다. 수줍게, 하지만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옮기는 이 신중하고 듬직한 배우의 원동력 역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있다. <거래>에서 홀로 고립된 납치 피해자 역은 늘 팀의 일부로 활약했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언젠가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눈과 거기에 생기를 부여할 줄 아는 성실함을 지닌 배우다. 모자람을 알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그는 배우로서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 민우는 처음엔 납치극의 피해자였는데 점점 한편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의 선택에 따라 상황은 더 엉망이 되고,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 맞다. 그런 점이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다. 민우는 만만하고 유약해 보이는데 내면은 굉장히 강인하다. 근데 이 강인함이 뭐냐면 절대 호구가 되지 않겠다,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한마디로 호구처럼 보이고 그런 취급도 많이 당해서 더이상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거래>의 캐릭터들은 모두 결핍이 있는데 민우는 평범한 관계, 그러니까 친구를 가지고 싶다는 갈망으로 시작된 인물이다. 갈망이 자칫 단순해질 수 있었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포인트다. 그 복잡함이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 익숙한 납치극처럼 보이다가도 화마다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인다.

= 회사로 시나리오가 왔는데 대표님이 읽어보시더니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재미있었길래 이러시나 싶었는데 읽고 나니 바로 납득이 됐다. 내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던 참이었다. <거래>에서 납치극은 계기일 뿐 그 안에는 청춘의 고민과 갈등이 응축되어 있다. 미성숙함으로 인한 고통, 실수와 실패 사이에서의 흔들림 같은 것들 말이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납치당한 인물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육체적으로 힘든 장면이 많다. 구타당하거나 갇히거나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숨을 못 쉬는 장면도 나온다.

= 몸이 막 힘들거나 하진 않았다. 비닐봉지를 쓰면 호흡이 힘든데 대사가 정확히 전달되길 원하셔서 그런 장면에서 좀 힘든 부분이 있긴 했다. 그보단 극의 전반과 후반 달라지는 인물의 양면성을 표현해내기 위해 고심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가는 편인데 그걸 감독님께 보여드리고 오케이를 받을 때 쾌감이 있다. 찍을수록 점점 인물의 감정에 살이 붙어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배우들의 나이대가 비슷하기도 하고 워낙 집중력이 좋은 분들이라 서로 잘 받아주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기존에 했던 역할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팀의 분위기 메이커, 순하고 착한 인물을 주로 연기해왔는데 민우는 훨씬 무겁고 강단이 있다.

=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납치범 둘은 팀이고 나는 혼자라 처음엔 조금 외롭기도 하고 의지할 곳이 없었는데 한편으론 그게 좋았다. 원래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하는 편이라 연기를 하고 나면 항상 제대로 했는지 불안하다. 아직 엉망진창이라 내 연기의 얕음이 들킬까 무섭다. 물론 이번에도 아쉽고 부족하지만 스스로 내면을 차분히 바라볼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좀더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며 모자란 부분을 메워나가는 경험이 됐다.

- 불안하다는 건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의 또 다른 면이 아닐까.

= 그랬으면 좋겠다. ‘연기를 못해서 혼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에 자주 빠진다. 그래서 더 준비를 꼼꼼히 하려는 것도 있다. 최근에는 많이 내려놓으려고 마인드 컨트롤 중이다. (웃음) 슛 들어가기 전에 ‘내가 최고야’라는 주문을 걸기도 하고.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도 아닐 테니. 사실 대부분 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작품 전면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낯설다. 낯설고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모든 순간들이, 앞으로 경험할 것이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 해보고 싶은, 욕심나는 역할이 있나.

= 작품 끝날 때마다 바뀐다. 가벼운 역할을 하고 나면 무거운 걸 하고 싶고, 악역을 하고 나면 친근한 걸 하고 싶고. <거래>를 마치고 나서는 조금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역을 하고 싶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작품을 고를 때 이야기가 제일 중요한데, 내가 해보고 싶은 특정 캐릭터보다는 작품 전반의 짜임새가 먼저 다가온다. 세상에 정확하게 딱 맞아 들어가는,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대본을 볼 때 짜릿하다.

- 배우들이 직접 연출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는데, 연출 욕심도 있는지.

=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최근에 단편영화가 너무 찍어보고 싶어서 혼자 대본도 쓰는 중이다. (유)승호에게 나중에 출연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해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웃음) 물론 실제로 실행하려면 갈 길이 멀다. 일단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멈춤 상태다. 글 쓰는 분들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지금은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어려운 것들. 예를 들면 청춘들의 자유로운 이야기라든지, 버디무비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요즘 목표는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배우로서의 나의 간극을 좀 줄여보려고 한다. 그게 너무 커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의 연기를 자책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장담하는 건 앞으로도 계속 불안해하리라는 거다. (웃음) 불안 또한 내 일부로 받아들여 조금씩 솔직하고 건강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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