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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답은 없다는 마음으로, ‘비밀의 언덕’ 임선우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3-07-04

마주 보며 함께 자란다. 명은(문승아)의 비밀과 거짓말을 곁에서 지켜보는 담임 선생 애란은 완벽하기보단 허당 기운이 넉넉한 보통의 선생이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소녀 명은의 눈에 애란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자 잘 보이고 싶은 근사한 도피처다. 애란 역을 맡은 배우 임선우는 “처음에는 내게 딱 맞는 역할이 아닌 것 같았다”고 운을 뗐다. “특별히 좋은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내가 어릴 적 겪었던 선생님들과 닮았다고 느꼈다. 선생님이란 존재가 어떨 땐 굉장히 내게 잘해주고 중요한 사람인데, 어떨 땐 순식간에 남처럼 거리감이 생기지 않나.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교육이라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어린 시절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걸 이입하고 의탁한다. 애란을 통해 그런 애매한 거리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임선우는 “시나리오를 읽을수록 인물의 빈틈이 궁금해졌고 어느새 애란에 대한 상상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명은을 중심으로 접근하다보니 초등학교 5학년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른스러운 고민을 할 수 있는지 의아했는데, 볼수록 단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쯤은 감춰져 있을 비밀의 언덕에 올라 우리의 숨겨진 기억을 발굴해내는 영화의 힘은 결국 디테일에서 나온다. “인물마다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하나씩은 꼭 있다. 감독님이 그런 디테일을 되도록 편집하지 않고 살려주셔서 좋았다. 가령 애란이 글짓기 대회 수상자 현수막을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애란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해봤다. 사실 없어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 장면이지만, 이지은 감독님은 사용 가능한 거의 모든 장면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 살려주셨다. 진심을 인정받은, 마치 내가 명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임선우는 명은 역의 문승아 배우가 아직도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며 진심을 확인했던 현장은 “그야말로 평화로웠다”고 회상한다.

정답은 없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왔다는 임선우는 <비밀의 언덕>에서 또 하나의 연기 비밀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답을 정하는 대신 이제껏 거쳐온 역할들이 내 안에 쌓여 있다는 걸 믿으려 한다. 그런 다음에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까지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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