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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죽음을 준비하는 하루를 반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온 세상이 하얗다'
김철홍(평론가) 2022-02-09

죽음을 준비하는 하루를 반복하는 한 남자가 있다. 생기 없는 화분 앞에 앉아 소주 한병을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인(강길우)은 어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사를 치를 밧줄까지 구비해놓은 그가 매일 같은 하루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지나친 음주로 인한 기억상실증 때문이다. 모인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여자 화림(박가영)과 하루를 보내게 된다. 술 없이 맨정신으로 일상을 버티지 못하는 것은 화림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연인으로 인해 극심한 불안에 빠져 있는 화림은 아침이 되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인에게 매번 정체를 바꿔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일상을 회복하는 걸까 싶을 때쯤 상황은 악화되고, 둘은 이제는 정말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태백으로 향한다.

김지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는 죽음을 다짐한 두 사람의 로드 무비, 혹은 유서 같은 영화다. 영화 중간 흘러나오는 모인의 내레이션이 곧 극의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느리게 진행되지만 두 주인공이 마지막 여행에서 벌이는 크고 작은 무모한 짓들이 분위기를 환기하며, 극중 언급되는 ‘남북통일’ 또한 오묘한 감흥을 준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영화가 마냥 침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의 열연 덕분이다. <정말 먼 곳> <더스트맨> <식물카페, 온정> 등 여러 국내 영화제 상영작들에서 주연을 맡았던 강길우 배우의 연기는 이번에도 돋보이며, 박가영 배우의 매력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상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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