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이지 않고 본뜬 탓에 괴로움은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베티블루>를 기억한다면 변주없는 반복의 지루함에, 보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의 비약 때문에 그렇다. 더구나 신파를 끼워넣은 결말 부분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정신병원에 감금된 수빈에게 “내가 언니 것을 다 빼앗았다”며 과거사를 들먹이며 용서를 구하는 수빈의 동생이나 넋을 놓아버린 연인을 눕힌 뒤 라면을 먹으며 엉엉 울어대는 재모에게 처연한 시선을 주기란 쉽지 않다. 그 탓에 정박중이던 폐선에 몸을 싣고, 죽음이라는 극단의 도피를 행하는 상황마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광고와 사진작업을 해오다 데뷔한 박성일 감독은 “연인들의 소통과 정체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했지만, 두 남녀의 감정을 끈질기게 따라가야 할 대목에서 카메라는 멈춰선다. 자해한 뒤 뛰쳐나가는 수빈과 그녀를 뒤쫓는 재모를 단 몇컷으로 처리하는 장면이 대표적. 실루엣으로 처리한 섹스 장면이나 악기를 바꾸어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선율만으로 어설픈 드라마의 이음새를 메우려 했다면 욕심이 너무 과했던 듯 보인다.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