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데뷔작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을 통해 재기발랄함을 입증한 가이 리치가 선택한 두 번째 영화는 전편을 업그레이드한 작품이다. 고만고만한 배우들을 기용했지만 기가 막힌 시나리오와 경쾌한 연출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그로서는 첫 작품에 충분한 예산을 털어넣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이 리치는 초저예산영화 <엘 마리아치>로 재미를 본 뒤 당대의 스타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기용해 범작 <데스페라도>를 만든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낭패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브래드 피트나 베네치오 델 토로 같은 스타급 연기자가 기용됐지만 이야기는 전편보다 매끄럽지 못하고 스타일도 전편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전편과 달라진 점이라면 자신의 아내 마돈나의 <럭키 스타>를 영화 중간에 틀어놓을 정도로 뻔뻔해진 가이 리치의 태도쯤?). 불행히도 리치 역시 로드리게스가 거쳐간 수렁에 빠진 셈이다.
물론 <록 스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스내치>는 잘 만든 영화일 수도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물고물리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나 MTV 세대에 걸맞은 빠르고 감각적인 화면, 특유의 블랙유머 등이 적절히 배치된 오락영화임에 틀림없으니까. 제목 그대로 다이아몬드를 강탈하고 강탈당한다는 단순한 구도에서 출발, 10여명의 캐릭터를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구성해낸 것으로 미뤄봐도 리치가 최소한 ‘잔머리’ 하나만큼은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 하나 평가해줘야 할 것은 ‘원 펀치’ 미키 역의 브래드 피트다. 대스타라는 지위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진’ 그는 극중 영국인들도 알아듣지 못할 고약한 아일랜드 사투리를 써가며, 상당히 멍청한 양아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